반도체·배터리·전기차 등 글로벌 주요 국가들이 첨단 사업 주도권 확보를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국민들은 새 정부에 ‘우수 인재 양성’과 ‘규제 혁신’ 정책을 가장 먼저 주문했다. 해외로 떠나거나 투자를 멈춘 기업들을 되돌려 경제성장의 근간으로 삼기 위해서는 경영 활동의 발목을 잡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데 국민도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 최대 과제는 ‘인재 양성’
8일 서울경제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기업 인식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28.6%는 새 정부에서 미래 첨단 산업 경쟁을 위해 가장 먼저 지원해야 할 부분으로 ‘우수 인재 양성’을 꼽았다. 근소한 차이로 ‘규제 혁신(28.2%)’이 두 번째로 높은 응답을 받았다. ‘고용 유연화’가 17.5%, ‘세제와 보조금 지원’이 14.2%로 뒤를 이었다.
반도체·배터리를 비롯한 핵심 첨단 수출 산업의 경우 글로벌 수요 증가로 시장이 성장하면서 필요한 인력도 늘고 있지만 경쟁국과 비교해 국내 인력 수급은 턱없이 어려운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에서 매년 필요한 신규 전문 인력은 1500명이지만 실제 국내에서 한 해 배출되는 반도체학과 학부생은 650명으로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배터리 또한 2020년 업계 추산으로 3300여 명의 인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인재 찾기’가 기업 생존의 핵심 사안으로 떠오른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 누적해 쌓인 규제로 인한 어려움은 더 큰 문제다. 그나마 ‘인력 양성’은 기업의 자체 노력으로 어느 정도 극복해 오고 있지만 기업 활동을 겹겹이 둘러싼 규제는 정부의 의지 없이 풀 수조차 없는 장애물이다.
국민들은 ‘기업 활동을 옥죄는 가장 큰 요인’을 묻는 질문에 ‘복잡한 규제(28.8%)’를 첫째로 꼽았다. 기업뿐 아니라 국민들도 기업을 대상으로 한 규제가 지나치게 많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법인세·상속세 등 과다한 세금’을 언급한 답변도 24.2%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기업과의 주요 갈등 원인으로 지목돼 왔던 ‘친노동정책(10.6%)’도 주요 장애물로 언급됐다. ‘반기업 정서’도 12.2%였는데 기업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은 기업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는 중요한 요인인 만큼 산업계의 자체 인식 개선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51%, 윤석열 기업 정책 “도움될 것”
국민들은 여러 산업 중에서도 향후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나갈 분야는 첨단 분야에 있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이번 조사에서 ‘우리 경제를 이끌어나갈 분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4.7%가 ‘반도체’라고 답했다. 이어 전기차 12.2%, 바이오 11.8%, 혁신 스타트업 11.6%, 배터리 5.0%, 로봇 4.9% 등의 순이었다. 글로벌 첨단 기술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주요 산업들이 곧 우리 경제의 미래를 책임질 먹거리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첨단 산업은 기존 산업과 달리 최근 들어 국가와 기업이 ‘원 팀’을 이뤄 경쟁력을 확보하는 추세다. 기업 외에 정부의 역할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새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각종 규제를 없애거나 줄이고 첨단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지원을 늘려 기업 친화적 정책을 펴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국민들은 새 정부 출범 후 경제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를 좀 더 높게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의 시장경제와 기업 친화 정책 표방이 우리나라 경제 상황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1.7%가 ‘도움이 될 것(크게 도움이 될 것 30.3%, 조금 도움이 될 것 21.4%)’이라고 답했다. ‘경제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본 응답은 31.3%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윤석열 정부가 앞으로 가장 협력해야 할 국가로는 미국을 선택한 답변이 59.5%로 절반을 훌쩍 넘었다.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12.8%)을 택한 응답보다 네 배 이상 많았다. 주요 첨단 산업의 최대 수요가 미국에서 형성되고 있고 기술·공급망 등 협력해야 할 분야가 폭넓은 만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한 결과로 해석된다. 이어 아세안(6.1%)·유럽연합(5.9%)은 비슷한 수준의 응답 비율을 보였다. 일본의 경우 2.8%만이 선택해 협력해야 할 국가 우선순위에서 뒤처지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답한 응답도 7.7%를 나타냈다. 김봉만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본부장은 “새 정부는 미국·중국과의 적절한 외교 관계 설정, 한일 관계 개선 등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제 전략을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