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실질적 비핵화땐 담대한 계획 준비"…北에 '先비핵·後경제' 제안

[윤석열 대통령 취임-취임사로 본 외교·안보 비전]

北도발 막기위한 확장억제력 강화

역대 보수정권의 대북원칙 재확인

일각 "MB 비핵·개방·3000 버전2"

직접적인 대북 대화 제안도 없어

대북제재·북한인권 문제 해결 등

국제사회 발맞춰 적극 동참 예고도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취임사를 통해 ‘선(先)비핵화, 후(後) 경제개발’이라는 대북정책 원칙을 재확인했다.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조치가 남북 관계보다 우선한다는 보수 정권의 대북 원칙을 반복한 셈이다.



윤석열 정부는 또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를 주장하며 북한 도발을 막기 위한 확장억제력 강화에 힘쓸 것임을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이 이명박(MB) 정부의 ‘비핵·개방·3000’을 그대로 따를 가능성이 높다”면서 “향후 5년간의 남북 관계는 지난 5년과는 또 다른 모습의 변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모두 5번에 걸쳐 북한을 직접 거론하며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대북 구상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우선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와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 “지금 전 세계 어떤 곳도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지금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한반도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서도 평화적 해결을 위해 대화의 문을 열어 놓겠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0시 서울 용산 대통령실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에서 국군통수권을 이양 받은 뒤 원인철 합동참보본부 의장으로부터 북한 군사 동향과 우리군 대비 태세에 보고를 받으며 집무를 시작하고 있다. 사진 제공=대통령실윤석열 대통령이 10일 0시 서울 용산 대통령실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에서 국군통수권을 이양 받은 뒤 원인철 합동참보본부 의장으로부터 북한 군사 동향과 우리군 대비 태세에 보고를 받으며 집무를 시작하고 있다. 사진 제공=대통령실




윤 대통령은 이어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 경제와 북한 주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선언했다.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조치가 이뤄지면 우리 정부가 북한 경제 발전을 돕겠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원칙 있는 대북 협상을 강조하며 북한 비핵화 진전에 발맞춰 경제협력과 남북 공동 경제 발전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관련기사



전문가들은 차기 정부의 대북 정책이 ‘비핵·개방·3000 버전2’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윤 대통령으로서는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상황”이라며 “북한에 대화를 전격적으로 제의하기도, 또 북한 얘기를 전혀 하지 않기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 교수는 “보수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도깨비방망이’가 없다. 진보 정부처럼 치고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라며 “비핵·개방·3000의 연장선상이 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전했다. 진보 정권은 북한 비핵화와 남북 관계 발전을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북한에 과감한 선공을 던질 수 있지만 보수 정부는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대화의 문을 열어두겠다”면서도 대화를 직접 제안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아쉽다는 지적도 있었다. 왕선택 한평정책연구소 글로벌외교센터장은 “대화의 문을 열어 놓는다는 말을 넘어 북한에 대화를 제안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대화에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이라는 입장을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 대신 ‘북한 비핵화’ 표현을 사용한 데 대해서도 동일한 평가가 나왔다. 왕 센터장은 “‘북한 비핵화’는 북한이 극렬하게 반발하는 용어”라며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면서도 남북 관계 개선이나 대북정책 추진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 역시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한반도 비핵화’로 합의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개념 정리부터 새로 하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비핵화 용어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심해질 것이다. 앞으로 갈 길이 먼 셈”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이 국제사회 주도의 대북 제재와 북한 인권 문제 해결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시민 모두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고 확대하는 데 더욱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 국제사회도 대한민국에 더욱더 큰 역할을 기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최근 일련의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한미일 3국은 안보리 공개회의 소집을 요청했다”며 “한국이 회의 소집을 직접 요청한 것은 최근 사례 중 처음”이라고 전했다. 외교 당국 역시 대북 강경 기조의 윤석열 정부 출범에 발맞춰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하는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기간 후순위로 밀렸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손을 댈 가능성도 있다. 북한 주민 인권 개선을 위한 재단 출범은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도 담겼다. 이런 탓에 남북 관계는 한동안 냉각기를 가질 가능성도 높다는 전망도 있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 문제에 대한 국내 컨센서스(합의)를 이루는 게 새 대통령에게 굉장히 중요한 과제”라면서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경은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