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을 남긴 1970년대 저항 시인 김지하(본명 김영일) 시인이 11일 3년 전 먼저 잠든 부인 김영주 씨 옆에서 영면에 들었다.
발인식은 이날 오전 9시 연세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애도 속에 엄수됐다. 고인의 유해는 오전 10시 화장한 뒤 부인 김 씨가 묻힌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선영에 안치됐다. 고인은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고 박경리의 외동딸이자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낸 김 씨와 1973년 결혼했다. 10여 년 전부터 지병으로 투병한 김 시인은 8일 오후 4시 81세를 일기로 원주시 판부면 자택에서 타계했다. 임종 당시 말도, 글도 남기지 않고 눈을 깜빡,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미소를 짓고서 가족들과 작별했다.
고인의 장남인 김원보 작가와 차남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생전 김 시인과 인연이 있는 이들이 마지막 떠나는 길을 배웅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과 판소리 명창 임진택 연극연출가, 이청산 전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이사장 등 문화예술계 지인과 후배들도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차남 김 이사장은 앞선 가족 예배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함께해 주신 모든 분께 가족을 대표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 전 이사장은 “서슬 퍼런 독재 정권 속에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김지하라는 우리들의 정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 땅의 민주주의 초석을 놓으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고인은 떠났지만 김 시인의 사상·문화적 업적을 기리기 위한 추모 행사는 이어진다. 김 시인의 후배 문화예술인과 생명운동가 등은 고인의 49재에 맞춰 다음 달 25일 서울에서 화해와 상생 차원의 추모문화제 ‘생명 평화 천지굿’을 열기로 했다. 교보문고와 온라인 서점 알라딘도 9일부터 한 달간 온라인 추모전을 진행하고 있다.
김 시인은 1970년대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의 상징이자 민족 문학 진영의 대표 문인이었다. 1969년 등단 이래 1970년 국가 권력을 풍자한 시 ‘오적’으로 구속됐고 1974년에는 민청학련 사건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