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1928~1987)의 ‘총 맞은 푸른 마릴린(Shot Sage Blue Marilyn)’이 20세기 이후 미술 시장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지난 9일(현지시간) 크리스티 뉴욕의 이브닝세일로 진행된 ‘토마스·도리스 암만 컬렉션’ 경매에 시작가 1억 달러로 선보인 ‘총 맞은 푸른 마릴린’은 3분 넘게 이어진 경합 끝에 1억9504만 달러(약 2500억 원)에 낙찰됐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낙찰받은 사람은 현장에 마련된 방에서 응찰한 아트 딜러 래리 가고시안으로 확인됐다. 세계 최정상 갤러리로 꼽히는 가고시안갤러리의 주인이다. 인생은 돌고 돈다. 가고시안은 지난 1986년 스위스의 미술품 수집가이자 거래상이던 토마스 암만에게 바로 이 작품을 팔았다. 이번 경매는 토마스 사후 그의 수집품을 이어받은 여동생 도리스가 지난해 별세한 후 그들의 컬렉션 36점으로 꾸려진 기부 목적의 특별경매였다. 억만장자 컬렉터들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는 가고시안이 대리인 자격으로 응찰한 것인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피카소를 누른 워홀
워홀의 ‘총 맞은 푸른 마릴린’은 파블로 피카소가 갖고 있던 20세기 미술품 최고 경매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은 지난 2015년 크리스티 뉴욕에서 1억7940만 달러(당시 환율 1968억원)에 팔렸다. 낙찰자는 카타르의 전 총리이자 억만장자인 하마드 빈 자심 자베르 알 타니(Hamad bin Jassim bin Jaber Al Thani)였다.
전 세계 미술경매 사상 역대 최고가는 2017년 11월 크리스티 뉴욕에서 팔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도르 문디’가 기록한 4억5030만 달러(당시 환율 약 5000억원)다. 사우디 왕자 빈살만이 구입해 루브르 아부다비에 전시됐다.
자신을 뛰어넘은 워홀
기존의 워홀 작품 최고가는 2013년 소더비 경매에서 1억540만달러에 팔린 ‘실버카 크래시(Double Disaster)’였다. 이번 경매로 자신의 최고가 기록을 두 배 가까이 뛰어넘은 셈이다. 동시에 워홀은 미국 작가의 경매 최고가 기록도 새로 썼다. 한동안 초고가 미술시장에서 ‘주춤’했던 워홀의 위상이 다시 올라서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뉴욕의 미술품 가격감정 전문가 데이비드 샤피로는 “워홀의 작품 중에서도 ‘총 맞은 마릴린’ 시리즈는 단 5점 뿐이라 오랫동안 관심을 받아왔으며, 그 중 하나를 수집할 기회는 극히 드물다”면서 “그간 개인 간 거래(private dealer market)에서 언급됐던 ‘2억 달러짜리 워홀 작품’이 공개적으로 실현됐다”고 말했다.
살아남은 워홀의 마릴린
‘총 맞은 마릴린’이 고가에 거래된 이유 중 하나는 작품의 남다른 사연과 그로 인한 희소성이다. 먼로가 세상을 떠난지 2년 뒤인 1964년, 워홀은 먼로의 출세작인 영화 ‘나이아가라’(1953)의 포스터 사진을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했다. 각각 다른 색으로 완성한 5점이었는데, 붉은색 계열의 빨강·주황 작품과 푸른색 계열의 연청·진청·청록색 작품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워홀식 먼로 초상화였다. 하루는 워홀의 동료이자 행위예술가인 도로시 포드버가 스튜디오를 방문해 이들 초상화를 겹쳐 세워달라고 했다. 워홀은 사진을 찍겠다(shoot)는 줄로 알았는데, 포드버는 권총을 발사(shot)했다. 5점 중 2점은 총알이 관통했고, 이번 낙찰작은 그 중 살아남은 한 점이다. 이 사건 이후 제목 앞에 ‘총맞은’(Shot)이 붙었고, 5점뿐인 작품은 거래가 성사될 때마다 몸값을 끌어올리고 있다. 샤피로가 언급한 ‘2억달러’는 오렌지색 작품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