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자유롭게 뛰게 놓아두면 성장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한국은 ‘초고속’ 압축 성장 신화를 쓴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입니다. 코로나19로 지난 2년 동안 암흑기이자 혹한기를 보냈으니 이제 엔데믹을 새로운 경제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중소기업중앙회 창립 60주년을 맞은 14일 김기문(사진) 중기중앙회장은 “시장경제는 진리이며 이를 인정하는 것이 시대정신”이라면서 “정부와 기업의 관계가 달라져야 다시 한번 고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지난 5년 동안 경제인들이 위축된 측면이 있는데 새 정부에서는 보다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며 “다만 빠른 경제성장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 문제에 대한 디테일은 유념해야 한다”고 했다.
국내 전체 기업의 99%를 중소기업이 차지하고 있고 기업 종사자의 83%가 중소기업에 다닌다. 하지만 전체 기업 매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이 채 안 되는 48%에 그친다. 이익 비중은 더 낮다. 매출과 이익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커졌고 이로 인해 종업원 임금과 복지도 차이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 23~24대를 거쳐 26대 중기중앙회 회장으로 재임하며 그 누구보다 중기 현장과 현안에 정통해 ‘중기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그가 성장과 함께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바로 양극화 해소다. 김 회장은 바로 이 양극화를 해소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코로나19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붕괴를 비롯해 원·부자재 및 유가 급등,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 등 기업들의 경영 여건이 악화하고 있어 납품단가연동제 도입은 중소기업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공약했던 납품단가연동제의 제도화는 지지부진하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글로벌 공급망이 완전히 붕괴되면서 철강·석탄 등 가격이 오르지 않은 게 없다”며 “납품 단가가 연동되지 않을 경우 건설 현장도 곧 멈출 수밖에 없는데 지금까지도 막대한 손해를 보고 납품한 중소기업들은 이제 사실상 한계에 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설을 비롯해 제조업 현장이 멈출 경우 모든 분야의 공급 부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야기돼 우리 경제가 망가질 수 있다”며 “납품단가연동제가 중소기업만 힘들다는 아우성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은 경제의 기초를 모르는 이들의 인식”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관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멘트 기업의 경우 매출액이 10% 올랐지만 영업이익은 100%가량 줄어든 상황이다. 김 회장은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 여러가지 요인들을 다양하게 분석하는 복합적인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산적한 중기 현안 중에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이슈들이 상당하다. 주 52시간 근로제의 유연화를 비롯해 외국 인력 쿼터제 완화, 급상승한 최저임금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이슈들은 물가 상승을 비롯해 인력 부족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산업 현장과 농가에서 일손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은 흔한 풍경이 됐다. 우리나라는 2025년이면 65세 이상의 인구가 20%를 넘어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노동인구가 감소한다는 것인데 이는 우리 경제의 또 하나의 뇌관이 될 수 있다. 김 회장은 기업 현장의 인력 부족 문제는 정부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고령화, 노동 가능 인구의 감소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며 “대안을 찾지 않을 경우 성장은 멈출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우리는 이제 다문화로 갈 수밖에 없다”며 “외국 근로자 쿼터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주 노동자 선진국인 독일을 예로 들었다. 독일 인구의 20% 이상은 이민자인데 이 중 터키 출신 이주 노동자들이 없으면 서비스·제조업 현장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제조업 등에서 일할 내국인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외국인 근로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우리나라도 ‘다문화 사회’로 가지 않으면 경제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는데 국가도 이에 따라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체류 기간을 대폭 개선해 최대 12년까지 확대하고 사용주와의 스폰서십을 강화하는 등 제도 개선을 해야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경제에 대한 기대와 비전도 잊지 않았다. 김 회장은 “베이비붐 세대는 20대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1세기를 산 세대”라며 “MZ세대에게 굶어가며 일했던 이야기는 이제 통하지도 않겠지만 아버지 세대의 치열했던 삶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산업혁명과 같은 성장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화합이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도 역설했다. 김 회장은 “국가가 어려운 시절에는 모두 뭉쳐야 하는데 기업인을 중심으로 뭉쳐 신명 나게 일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