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협치는 혼자하는 게 아니다

여의도 장악한 野 만찬 회동 거부

대통령 주변은 측근들로 채워져

의회·행정권력의 소통 급하지만

상대방 인정 않으면 실현 불가능

송영규 선임기자송영규 선임기자




“저는 오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 것입니다. 취임식에 참석하는 것은 국민과 세계에 평화적 정권 교체를 보여주는 우리의 중요한 전통입니다.”

미국 플로리다의 릭 스콧 공화당 상원 의원이 지난해 민주당 후보로 미국 46대 대통령에 당선된 조 바이든의 취임식을 앞두고 밝힌 참석 이유다. 친(親)트럼프 성향이 강한 테드 크루즈, 로저 마셜, 토미 투버빌 등 다른 공화당 상원 의원들도 스콧과 같이했다. 상원 의원뿐 아니다. 25세의 나이로 공화당 최연소 하원 의원이 된 매디슨 코손도 모습을 보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느 정당이 배출했든 대통령을 존중하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한 대선을 치른 미국 정치인의 모습이다.



우리도 미국만큼 처절한 대선을 치렀고 그 결과 윤석열 정부가 탄생했다. 정치 지형은 복잡해졌다. 여소야대. 행정 권력과 의회 권력이 철저히 나뉘었다. 갈라선 것은 권력만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 2030세대와 50대도 대척점에 섰다. 대선이 끝난 직후부터 ‘협치’와 ‘통합’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은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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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치의 중요성은 16일 윤석열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도 등장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이 손을 잡은 것을 상기시키며 “각자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는 다르지만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손을 잡았던 (윈스턴) 처칠과 (클레멘트) 애틀리의 파트너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법률안 예산안뿐 아니라 국정의 주요 사안에 관해 의회 지도자와 의원 여러분과 긴밀하게 논의하겠다”며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세계 공급망 교란과 곡물값 폭등, 스테그플레이션 우려 등 작금의 우리가 직면한 위기가 세계대전에 버금갈 정도로 심각한 만큼 협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미일 터다.

협치는 강자가 약자에게 내미는 포용의 기술이다. 우리는 협치를 거론할 때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만 맞는 얘기다. 행정 권력은 윤 대통령이 잡았지만 여의도의 권력자는 여전히 168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다. 박수를 치려면 손바닥이 마주쳐야 하듯 협치를 하려면 대통령과 여당만이 아니라 야당도 나서야 하는 이유다. ‘협치는 대통령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그래서 틀렸다.

과연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윤 대통령 취임식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면 불길함부터 떠오른다. 취임식에서 민주당 의원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용기를 내 얼굴을 비친 의원은 ‘왜 갔느냐’는 비난과 마주해야 했다. 새 정부 초기 내각 인사 때는 장관 인사를 총리 인준과 연계하려는 모습까지 보인다. 게다가 대통령이 제의한 만찬 회동까지 거부했다. 의회 권력만의 문제는 아니다. 윤 대통령은 주변을 검찰 중심의 측근들로 채웠다. 보수 평론가조차 ‘우려스럽다’는 의견을 낼 정도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전 정권에서 좌천된 인물이다. 스스로를 ‘전 정권의 최대 피해자’라고 규정한 이가 과연 사심이 없을까. 대통령을 존중하지 않는 권력과 통합을 말하지 않는 권력은 공생할 수 없다.

영국의 지질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로저 오스본 교수는 저서 ‘처음 만나는 민주주의의 역사(Of the People, By the People)’에서 “민주주의는 개인적인 삶을 허용하면서도 모두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집단적 노력”이라고 정의한다. 그가 볼 때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이유는 간단했다.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의 통치권을 정당하다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들의 사무실에 내 초상화가 걸리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대신 여러분 자녀들의 사진을 걸어 놓으세요. 모든 것을 결정할 때 그 사진을 바라보십시오.” 한때 우리가 코미디언 출신이라 조롱했던, 그러나 지금은 영웅이라 불리는 볼로드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취임사 중 한 대목이다. 우리 정치인들은 과연 자녀들의 사진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까.


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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