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남미부터 유럽·아시아태평양까지 군사·경제 외교를 위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베네수엘라·쿠바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고 소말리아 재파병을 결정한 데 이어 19일(현지 시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신청한 핀란드와 스웨덴의 수장도 백악관에서 만난다. 이후에는 곧장 닷새간의 한국·일본 순방에 나선다. 중국 및 러시아에 대응할 새로운 동맹 전략의 필요성이 불거지면서 미국이 주요 블록의 동맹국과 비동맹국을 모두 끌어안으며 국제 질서 새 판 짜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은 바이든 정부가 베네수엘라 정부에 대한 경제 제재를 완화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한 관료는 "베네수엘라에 진출한 유럽 기업들이 베네수엘라 원유를 유럽으로 들여올 수 있게 허용할 계획"이라며 "셰브런의 베네수엘라 사업 재개 협상도 허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WP는 미 재무부가 이미 셰브런에 베네수엘라 정부와의 협상 허가증도 발급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쿠바의 제재 해제도 결정했다. 전날 미 국무부는 1인당 1000달러로 제한됐던 송금 한도와 친인척으로 한정했던 송금 대상을 없앤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쿠바를 오가는 항공기에 대한 허가도 늘리며 쿠바의 수도 아바나 이외 지역으로의 운항도 허가한다.
미국 정부가 각각 2017년과 2019년부터 시행한 쿠바와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는 것은 미국의 앞마당인 남미를 더 이상 중국과 러시아에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중국은 풍부한 자원을 가진 남미의 자원 개발에 대거 투자한 것을 비롯해 최근에는 아르헨티나와 원자로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하는 등 남미에서도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를 확장하고 있다. 러시아 역시 2월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중남미 국가에 자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선제 판매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다져왔다. 뉴스위크는 "(미국의 베네수엘라와 쿠바 제재 완화는) 주로 유럽과 아시아에 관여하던 미국이 서반구에 새롭게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중남미 정책을 손 본 바이든 대통령은 곧장 유럽·아시아의 동맹 강화 행보에 나설 예정이다. 이날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19일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와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만난다며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 신청과 유럽 안보 문제를 논의하고 글로벌 이슈에 대한 파트너십 강화, 우크라이나 지원 등을 의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 신청에 연일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상황에서 미국이 든든한 우군이 될 것임을 보여주는 행보로 읽힌다.
20일부터 시작되는 아시아 순방 기간에는 한미정상회담과 미일정상회담,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호주의 안보협의체) 정상회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 등이 예정돼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중국 견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도 IPEF 출범 선언 정상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이 밖에 16일 미국이 소말리아에 미군 병력을 재배치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으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정하던 '세계의 경찰' 역할을 계속 이어갈 것임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의 세계 구상이 현실화할지는 의문이다. 당장 다음 달 미국에서 열리는 제9차 미주정상회의부터 순탄치 않다. 미국이 쿠바·니카라과·베네수엘라를 회의에서 배제할 것으로 알려지자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과 루이스 아르세 볼리비아 대통령은 이들이 배제될 경우 불참하겠다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BBC는 "미국이 전 세계, 특히 러시아와 중국에 이번 회의를 홍보하려 하지만 남미가 바이든 정권을 중심으로 단결됐다는 인식이 방향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핵심 동맹국들을 회의에 참석하라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이미 미국의 약점이 부각됐다"며 "회의 성공 여부와 별개로 남미에서 중국의 거침없는 진군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