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시골에서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간혹 눈에 띄는 사람들도 열에 아홉은 초고령자들이다. 초등학교는 학생이 없어 폐교된 지 오래며 이제는 노인 인구를 위한 요양원으로 변하고 있다. 70대 할머니가 예전에 공부했던 그 교실에서 90대 노모와 생활하고 옆방에는 함께 뛰어놀던 친구가 산다. 어린 시절 다니던 초등학교가 생의 마지막 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인구학자인 전영수 한양대 교수가 코로나19 직전 일본에서 목격했다는 모습이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고령화하는 일본의 아픔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는 대한민국의 인구절벽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15초가량 보여주는 모션그래픽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다. 2021년에는 50세 부근이 가장 두꺼운 마름모꼴이지만 2100년으로 다가갈수록 이 지점이 위로 올라가 사라지면서 아이스크림콘 모양으로 바뀐다. 2021년 4997만 명(외국인 제외)인 인구는 2100년엔 1948만 명으로 2000만 명대가 깨진다. 인구 변화는 정해진 미래라고 불린다. 사망·출산율 추정에 따라 다소 변하더라도 기존 인구 데이터는 거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구절벽 폭풍의 영향권에 접어들었다는 말이다. 15~64세의 생산가능인구는 2017년에 감소세로 돌아섰고 사망자가 출생자를 넘어선 데드크로스는 2020년에 발생했다. 외국인을 포함한 인구는 2021년 감소세로 전환했다. 학생이 없어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는다는 ‘벚꽃엔딩’도 시작됐다. 가장 많이 일하는 25~59세의 인구를 기준으로 보면 2018년이 2800만 명 정도로 정점이었고 2032년까지 부산시 인구(324만 명)가 사라진다고 한다.
연금 기금 부실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적자로 돌아선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에 대한 혈세 지원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됐다. 내년에는 사학연금까지 적자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도 2050년 중반이면 고갈된다. 그러나 노인들은 늘어나고 일할 사람이 적어지면서 세수가 줄어든다. 공제·면세 혜택이 사라지고 증세가 이어지고 사회보험료도 줄줄이 인상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연금 개혁은 괴롭지만 이제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인구학자들은 성장 시대에 맞춰진 사회 시스템을 방치하면 청년들이 과도한 세금으로 나라를 등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교육이 완료되면서 소비가 급속히 감소하며 경제도 침체된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디플레이션 고통이 우리 눈앞에도 다가왔다는 이야기다.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산율은 2021년 0.8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다. 해마다 기록을 경신한다. 정부는 열악한 보육 환경과 양성 불평등을 원인으로 꼽고 개선해왔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부동산·교육비 부담도 이유로 꼽혔지만 요즘에는 과도한 경쟁 환경이 지목된다. 사람은 생존해야 하고 재생산도 해야 하지만 경쟁이 심해질수록 재생산보다 생존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수도권에 집중된 자원이 분산될 수 있도록 수도권 이외 한두 곳을 집중 개발하는 불균형 개발 전략이 절실히 요구된다. 정년 연장은 고령화와 연금 재정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청년층과의 일자리 충돌을 막기 위해 당장 도입하는 것은 곤란하다. 인구학자들은 출산율 1.3명 이하의 초저출산 시대가 시작된 2002년생이 노동시장에 들어갈 2030년 즈음에 본격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한다.
인구절벽으로 터져 나올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경제를 진작시켜야 한다. 잠재성장률은 노동과 자본, 생산성의 영향을 받는다. 노동의 감소로 성장률이 줄어드는 것을 보완하려면 생산성을 높일 수밖에 없다. 과감한 규제 완화와 노동시장 개혁으로 기업이 마음껏 뛰어놀게 해야 풀 수 있다.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노동의 감소세를 보완하는 노력도 절실하다. 젊고 우수하고 부유한 외국인에 대한 문호를 적극 개방하자. 고구려·고조선은 이민족에 포용적이었다. 로마·미국 등이 번성하고 역사를 주도해올 수 있었던 것은 관용으로 문호를 개방했기 때문이다. 인구절벽의 위기를 대비할 골든타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낡은 이념 논리, 편가르기, 포퓰리즘을 버리고 오직 나라의 미래를 보고 정책을 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