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폭격기’ ‘차붐’으로 불리며 독일 무대를 평정했던 차범근(69) 전 감독. 그가 독일을 넘어 유럽 전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대회가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의 전신 UEFA컵이다. 1979~1980시즌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유니폼을 입자마자 팀에 UEFA컵 우승컵을 안기며 유럽 축구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줬다.
당당히 독일로 돌아온 차범근이 시민들 앞에서 번쩍 들어 올렸던 우승컵. 하지만 그 트로피가 40년 넘게 프랑크푸르트에 돌아오지 못할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프랑크푸르트는 차범근이 떠난 후에도 유럽 무대를 수차례 두드렸지만 우승과 거리가 멀었다. 결승 진출조차 한 적이 없으니 ‘차붐 시대’가 사실상 최고 전성기였다.
40년 넘게 차붐을 추억할 수밖에 없었던 프랑크푸르트. 유럽 축구 변방으로 밀려난 독수리 군단(프랑크푸르트의 애칭)이 42년 만에 일을 냈다. 프랑크푸르트는 19일(한국 시간) 스페인 세비야의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에서 열린 2021~2022시즌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 1 대 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 대 4로 승리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쉽지 않은 승부였다. 지금은 없어진 유러피언 컵위너스컵을 1972년에 제패한 후 50년 만에 유럽 대항전 우승컵을 꿈꿨던 스코틀랜드 소속 레인저스의 반격이 생각보다 거셌다. 프랑크푸르트는 라파엘 보레를 중심으로 가마다 다이치와 예스퍼 린드스트룀을 앞세워 공격을 몰아쳤지만 전반 내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흐름을 살리지 못한 프랑크푸르트는 후반 12분 치명적인 실수로 선제 실점까지 허용했다. 지브릴 소우의 헤더 미스에 이어 최종 수비수 투타가 넘어지면서 상대 공격수 조 아리보에게 완벽한 찬스를 내줬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는 물러서지 않았다. 후반 24분 필립 코스티치의 낮고 빠른 크로스를 보레가 밀어 넣어 1 대 1 균형을 맞췄다. 팽팽한 승부는 연장으로 이어졌지만 120분의 혈투 속에서도 균형은 깨지지 않았다.
결국 프랑크푸르트가 승부차기에서 웃었다. 주인공은 독일 국가대표 출신 골키퍼 케빈 트랍이었다. 연장에도 몇 차례 결정적 선방을 보인 트랍이 레인저스의 네 번째 키커 에런 램지의 슛을 막아냈다. 반면 프랑크푸르트는 키커 전원이 득점에 성공했다. 이로써 프랑크푸르트는 1980년 UEFA컵 우승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 유럽 대항전 정상에 올랐다. 차범근이 들어 올렸던 우승컵이 42년 만에 프랑크푸르트 팬들의 품에 돌아온 것이다.
올리버 글라스너 감독의 선택과 집중이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프랑크푸르트는 리그에서 11위를 기록했지만 유로파리그에 올인해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획득할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는 무패(7승 6무) 우승이라는 의미 있는 기록도 남겼다. 이는 2018~2019시즌 첼시(잉글랜드), 2020~2021시즌 비야레알(스페인)에 이어 대회 역대 세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