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 무릎 꿇을 용기…'獨보적' 성공 이끌다

■독일은 왜 잘하는가(존 캠프너 지음, 열린책들 펴냄)

2차 대전 전범국으로 통렬한 반성

1949년 제정된 기본법 기반으로

사회적 약속 중시 '엄격함' 몸에 배

난민 수용부터 환경·문화 지원…

유럽 넘어 세계 모범국으로 우뚝

트럼피즘 美·책임부재 英과 대조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옛 유대인 게토의 저항 투사 추모지 앞에서 무릎 꿇고 있는 발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옛 유대인 게토의 저항 투사 추모지 앞에서 무릎 꿇고 있는 발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




독일의 통렬한 반성과 책임 의식은 독일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있다. 사진은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독일의 통렬한 반성과 책임 의식은 독일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있다. 사진은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








최근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유럽 출장을 다녀왔는데, 목적지는 이탈리아였지만 독일 국적기를 타야했기에 긴장감이 서너배로 치솟았다. ‘독일은 엄격하다’는 게 이유였다. 백신접종 완료증과 PCR 음성 확인서 등의 서류를 완벽하게 갖췄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래서 갖게되는 신뢰감도 두텁다. 요청받은 것들을 확실히만 챙기면 이보다 더 평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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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으로 ‘파이낸셜타임스’ ‘텔레그라프’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이자 국제평론가인 신간 ‘독일은 왜 잘하는가’(원제 Why the Germans do it Better?)의 저자도 엄격한 독일에 대한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20대의 신입이 독일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인적 드문 새벽 4시에 빨간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경찰관에게 딱지를 떼였다. 한적한 차로에 앞으로도 몇시간은 차가 지나다니지 않을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규칙은 규칙이다. 이유를 불문하고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그게 독일이다. 책은 전후 75년간 현대 독일의 변화를 면밀히 분석하고, 부제이기도 한 ‘성숙하고 부강한 나라의 비밀’을 짚어준다. 영국인은 대영제국의 영화를 누렸기에 자존심이 세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이 독일의 공습을 당한 괴로운 역사도 있어 독일과는 앙숙인데도 “유럽을 넘어 세계 모범국”이라고 독일을 치켜세웠다는 점도 책에 대한 궁금증을 키우는 이유 중 하나다.

저자는 오늘날의 독일 정체성을 만든 “네 번의 계기”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전후(戰後) 독일은 “패배의 트라우마가 국가적 의식을 지배”할 정도로 비탄에 잠겼다. 이런 상황에서 1949년 ‘기본법’의 제정은 전후 재건의 탄탄한 기반이 됐다. 저자는 한창 록음악을 듣던 여자친구가 ‘루헤차이트(Ruhezeit)’ 시간이라며 갑자기 라디오를 꺼버린 일화를 들려준다. ‘조용히 있어야 하는 시간’인 루헤차이트는 오후 1~3시, 저녁 10시 이후 아침 7시까지인데, 그 이유는 다른 이들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특히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독일서 만난 한 펑크족의 말을 빌려 “모두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이라고 했는데 “그 영역이란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공간을 의미한다”고 했다. 사회적 약속을 중시하는 독일인의 인식이 바로 “세계적으로 위대한 헌법적 성취”로 평가받는 ‘기본법’의 성과라는 것이다. 미국·프랑스·영국 같은 승전국과 달리 패전국 독일은 ‘절차를 똑바로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독일의 젊은 지식인들이 주도한1968년의 68혁명은 자녀세대가 그 부모세대에 맞선 것으로, 나치와 홀로코스트 등에 대한 반성과 참회의 계기가 됐다. 또 하나는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동서독 통일이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강행한 2015년의 난민 수용 결정도 결정적이었다. 2014년부터 2019년 7월까지 독일에서 망명을 신청한 난민은 140만명. 이는 유럽연합 전체의 절반에 달하는 수였지만 독일은 그 중 100만명을 받아들였다. 저자는 독일의 강점이자 저력의 근간으로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첫 손에 꼽았다. 이민 수용, 환경에 대한 관심, 외교 정책, 문화에 대한 지원에서의 탁월함도 물론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이 책을 썼는가. “지금까지 등대와 같은 나라로 인정받던” 영국과 미국이 자유 민주주의 세계의 리더 자격을 잃어가는 상황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에게 ‘무티’(엄마)라 불렸던 메르켈 총리가 난민들을 받아들이며 “우리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고 선언했던 것은 전염병의 위기 앞에 그 심각성을 빨리 알아차리지 못한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나 배타적이고 예측불허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행동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기업들의 파산이 이어지고, 전기차·인공지능·컴퓨터 학습 분야에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두각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당장 벌어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앞에서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독일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독일의 회복력을 시험하기에 지금이 더없이 좋은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책은 “독일은 국가주의와 반계몽주의, 두려움의 시대에 유럽 최고의 희망”임을 재차 강조한다. 분명 배울 게 있는 책이다. 더불어 역사·이민·환경·문화·외교 등의 분야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수도 있게 한다. 2만3000원.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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