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기술 동맹’의 의제에 차세대 원전인 소형모듈원전(SMR) 기술의 공동 개발과 전 세계 원전 수주에서 협력하는 방안을 담기로 했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미래 산업의 핵심 기술처럼 원전 역시 경제안보를 위해 긴밀히 협력할 분야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양국이 원전 협력에 적극 나서는 이유도 이의 연장선에 있다. 한미 양국은 이미 지난해 정상회담에서 △원전 수출 공급망 공조 △수입국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협정 추가 의정서 수용 요구 △한미 원자력 고위급위원회 개최 세 가지를 중심으로 한 원전 수출 협력 방안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가 합의한 이 같은 협력 방안을 확장해 양국이 공동으로 세계 원전 시장에서 기술 동맹을 맺는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
양국은 무엇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 에너지 수급이 요동치는 상황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미래 산업의 핵심 기술도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없이는 발전할 수 없다. 양국이 탄소 배출량이 다른 전원에 비해 극히 적으면서도 효율성은 뛰어난 원전 분야에 협력해 공급망을 관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특히 이번 회담에서는 세계 원전 시장의 선두 주자였던 러시아의 빈자리를 노리는 보다 공격적인 공조 방안이 나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러시아는 국영 기업 로사톰을 발판으로 막대한 차관까지 제공하며 중국·인도·터키·방글라데시·핀란드 등 12개국에서 원전 36기 건설 계약을 따냈다. 하지만 최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핀란드가 최근 러시아 로사톰과 맺은 원전 사업 계약을 종료했으며 체코 역시 안보상의 이유로 러시아와 중국 업체를 원전 입찰에서 제외시켰다. 원전 수출 시장에서 반(反)러시아·중국 흐름이 오히려 세계 최고의 원전 기술을 보유한 우리나라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역시 한미의 원전 기술 동맹을 통해 원전 굴기에 나설 수 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전과 앞선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 원전 건설을 중단하면서 원전을 지을 산업 생태계가 사실상 붕괴된 상태다. 이 틈을 러시아와 중국이 공략했고 최근까지 원전 수출 시장을 주름잡았다. 현재 원전 생태계를 부활시키면서 수출 시장까지 노리는 미국이 기댈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와 중국이 주춤한 사이 한국과 손잡고 미국이 원전 시장에서 재기하는 복안이다.
한국 역시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원전의 원천 기술에 대한 지식재산권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고 수출을 위한 외교적 입지도 강화할 수 있다. 지난해 한미정상회담에서 ‘IAEA 안전 조치 협정 추가 의정서’가 있어야만 수출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이에 한국 원전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 국가에는 수출이 불가능해졌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하지만 21일 한미정상회담에서 이 부분까지 포함해 해결될 경우 우리의 원전 수출 움직임은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 서쪽 약 270㎞에 위치한 바라카 지역에 한국형 원전(APR1400) 4기(5600㎿)를 건설하는 사업을 따낸 뒤 추가 원전 수주는 전무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원전 밀월’에 나선다면 한국이 13년 만에 세계 시장에서 원전을 수주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달성하고 고급 일자리 10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한미는 나아가 상업화를 목전에 둔 차세대 원전인 SMR 협력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이 분야에서 미국 업체의 기술이 가장 앞서 있는 만큼 미국과의 적극적인 공조로 시장을 개척하는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