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방문 보셨나요?
①바이든 대통령이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반도체 공장으로 향하는 모습 ②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3나노(㎚·10억분의 1m) 공정 웨이퍼에 서명하는 모습 ③어마어마 규모의 평택 라인 모습 ④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두 대통령을 소개하는 모습 등 주목할 거리가 다양했죠.
오늘 저는 또 다른 '킬포인트'를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평택 라인에 들어갔을 때 방진복을 입은 엔지니어들이 각 반도체 장비들을 소개하는 모습도 보셨나요?
엔지니어들은 마치 인기 예능프로그램 '런닝맨' 출연자들처럼 'AMK' 'LAM' 'KLA'라는 명찰을 달고 소개에 임했죠. 이들이 미국 반도체 장비 회사 엔지니어인 건 알겠는데, 도대체 어떤 회사가 무슨 3나노 장비를 소개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이 명찰의 의미와 각자가 소개한 공정 장비가 무엇인지 뜯어보면서, '3나노 시대 한미 반도체 동맹'의 숨은 메시지가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CVD] AMK
AMK는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코리아'의 약어입니다. 미국 장비업체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의 한국 법인(코리아)인데요.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는 반도체 장비 사업으로만 지난해 회계연도 기준 163억달러(약 20조7500억원) 매출을 기록한 세계 반도체 장비 업계 1위 회사입니다. 국내 1위 장비 업체 세메스 지난해 연매출(3조1000억원)의 7배 수준입니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는 '전천후'입니다. 반도체 공정은 동그란 웨이퍼 위에 막을 쌓아올리고, 이 막을 회로 모양으로 깎아내는 작업을 수백 회 반복하는데요.
여기에 필요한 대부분의 장비 제품군을 확보한 종합 반도체 장비 업체라고 할 수 있죠. 그럼 그 중에서도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엔지니어는 어떤 장비를 정상들에게 소개했을까. AMK라는 명찰 위를 보면 'CVD'라는 글씨가 작게 적혀있죠. 이 공정에 활용되는 장비를 소개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CVD는 '화학기상증착 공법'을 말합니다. 용어가 복잡하지만 풀어보면 어렵지 않습니다.
반도체 공정은 얇은 막을 곱게 쌓고, 그곳에 회로를 깎아내는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죠. 여기서 얇은 막을 쌓아올리는 작업이 '박막 증착'입니다.
증착 방식은 다양합니다. 이 중 CVD는 고온의 상태에서 특정 기체(반응 물질)들의 화학적 반응을 유도해 막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우리 눈 오는 날을 상상해볼까요. 마치 벤치 위에 흰 눈송이가 내려 소복소복 쌓이듯, 반응한 화학 분자가 웨이퍼 위에 소복소복 쌓이는 게 CVD입니다. 첨단 반도체 공정에서 범용으로 쓰이고, 가장 발달된 증착 방법이죠.
아마 어플라이드 엔지니어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기존 여러 형태로 진행되던 증착 공정이 첨단 방식인 CVD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트렌드를 강조했을 겁니다.
3나노 시대에서 CVD 용도는 정말 다양하고 중요합니다. 최근 극자외선(EUV) 초미세 회로 시대에 접어들면서 CVD의 활용도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한 예로 액체를 웨이퍼에 떨어트려 빙빙 돌리면서 펴 바르는 '스핀 온' 방식을 CVD 방식으로 대체하는 움직임이 있는데요. 화학 반응을 활용하면 흐물흐물하게 굳는 액체 기반 스핀온 방식보다 더 견고한 구조로, 일정한 두께로 막을 만들어낼 수 있어 다음 식각 과정에서 더 정확한 공정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줍니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가 최근 사내 이벤트를 통해 소개한 CVD 방식을 그림을 아래 참고로 소개드립니다.
◇[계측] KLA
어플라이드 장비를 다 살펴 본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이 부회장은 KLA라는 업체 엔지니어를 만났죠. KLA의 지난해 연매출은 69억달러(약 8조7000억원)입니다. KLA는 '계측 최강자'의 대명사라고 불릴 만큼 이 분야에서 상당히 유명한 업체입니다. KLA 장비를 소개한 엔지니어 명찰 위에 '계측'이 적혀 있었던 이유도 이것이겠죠.
오늘날 반도체 업계에서 계측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계측은 검사(Inspection)와도 맥락을 같이 하는데요. 증착과 식각 과정 등 중요한 반도체 공정이 끝난 웨이퍼를 자세히 들여다 보는 과정입니다. 특히 회로 사이에 낀 불필요한 알갱이(파티클·particle) 여부를 살피거나, 회로에 상처가 나지 않았는지, 회로는 균일하고 반듯한지 등을 체크하며 결함(defect)을 확인하는 것이죠.
특히 3나노 시대에서 이 환영받지 못하는 이 알갱이 녀석은 ‘천둥벌거숭이’입니다. 회로 간격이 넓었을 때는 웬만한 알갱이가 있어도 회로 동작에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폭이 좁은 곳에 알갱이가 있으면 골치가 아파집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한강에 커다란 돌을 던져도 '퐁' 빠지고 말던 것이, 폭이 상대적으로 좁은 마을의 도랑에 똑같은 돌을 던지면 아예 물의 흐름을 막아버리는 것과 같은 문제랄까요. 그래서 결함 찾기는 더욱 중요합니다.
KLA는 계측 장비 중에서도 고급 기술을 요하는 '브라이트 필드(BBP·브로드 밴드 플라즈마)' 분야 강자입니다. 불순물 계측 장비 중에는 크게 '브라이트 필드'와 '다크 필드(LS·레이저 스캐닝)' 영역이 있습니다. 브라이트 필드는 웨이퍼 위에 쏜 빛이 렌즈에 그대로 들어와 검사를 하는 방식이라면 다크 필드는 빛을 비스듬히 쏴서 생기는 그림자를 보고 불량을 판별하는 방식입니다. 브라이트 필드 광원은 다크 필드에 쓰이는 빛보다 파장이 짧다는 특징 때문에 웨이퍼에 묻은 미세한 먼지를 더욱 선명하고 정확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기술 난도가 높은만큼 장비 가격도 높습니다. 수백억원 대 브라이트 필드 장비는 다크필드 장비 대비 2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 KLA는 70% 이상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고급 기술에 상당히 강한 면모죠. 당분간 이 공고한 점유율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KLA는 브라이트 필드 영역 외에도 새롭게 열리는 EUV 시대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EUV 회로를 찍어내기 위해 필요한 '마스크'라는 소재를 검사하는 장비를 개발해 진입 시도 중이라고 하는데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DEPO] LAM
마지막으로 두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램리서치 엔지니어에게로 다가갑니다. 램리서치 역시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세계 굴지의 반도체 장비 회사입니다. 지난해 연매출은 146억달러(약 18조 5858억원)입니다. 세계 반도체 장비 업계에서 2~3위를 달리고 있는 회사입니다.
이 회사의 한국 시장 매출을 주목할만 합니다. 분기마다 공개하는 램리서치 실적을 보면 한국 매출은 전체의 25% 내외를 차지할 만큼 높습니다. 지역별 매출을 보면 중국과 늘 1~2위 자리를 다투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램리서치는 한국 반도체 시장을 상당히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주요 고객사를 가까운 거리에서 대응하기 위함이겠죠.
램리서치는 지난해 경기도 화성시 발안 공장 문을 새롭게 열었습니다. 이 회사는 '램리서치매뉴팩춰링코리아'라는 한국 생산 법인을 통해 지난 2011년부터 운영을 해왔고, 2019년에는 5000호기 모듈을 출하한 바 있습니다. 발안 공장 운영을 통해 기존 국내 생산 능력을 2배로 늘려나가는 모습입니다. 지난 4월 3만㎡ 규모의 용인 R&D센터도 새롭게 오픈했습니다. 램리서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맞춤형 식각·증착 장비를 이곳에서 연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럼 램리서치 엔지니어 명찰 위에 적인 'DEPO'는 무슨 의미일까. 역시 증착이라는 뜻을 지닌 영단어 'Deposition'을 줄인 말로 해석됩니다. 앞서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가 대통령들에게 CVD 장비를 소개했죠. CVD는 증착의 범위 안에 포함이 되는데요. 램리서치는 어플라이드와 차별점을 두기 위해 대통령들에게 또 다른 방법의 증착 장비를 소개했습니다.
램리서치는 자사 '원자층증착(Atomic Layer Deposition·ALD)' 장비 알터스(ALTUS) 앞에서 기술을 소개했습니다. ALD는 차세대 증착 공정입니다. CVD는 분자 크기의 화학 물질로 막을 만들지만, ALD는 분자보다 작은 원자 알갱이로 층층이 박막을 쌓아 올리는 작업을 말합니다. 3나노 이하 미세 칩에 쓰일 더 얇고 단단한 막을 만들 수 있죠.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증착하는 선택적(Selective) 증착 공정도 ALD를 응용합니다. 이렇게 램리서치는 꾸준히 ALD 제품을 발표하는 추세입니다. 용인 R&D 센터에는 차세대 ALD 장비도 한창 연구되고 있어 국내 회사와의 협력이 주목됩니다.
사실 램리서치는 반도체 공정 중 만들어진 박막을 회로 모양으로 깎아내는 '식각' 장비에 강한 면모를 띄고 있습니다. 100단 이상으로 쌓아올린 낸드플래시 층에 저장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한번에 구멍을 뚫는 '채널 홀' 식각은 이 회사가 그야말로 독보적 입지를 구축하고 있죠. 최근 램리서치는 3나노 파운드리용 식각 장비 개발을 완료해서 '한국' 내 생산을 할 것이라는 발표도 했습니다. 향후 한국에서 행보가 상당히 기대되는 업체입니다.
◇미국 반도체 장비의 위력, '어마무시'합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라인에서 미국 업체 장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45%입니다. 지난해 미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반도체 장비 수입액은 43억달러. 전체 수입의 26%입니다. EUV 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ASML을 보유한 네덜란드(36%)에 이은 순위고, 일본(24%)보다 높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내재된 가치는 이 비율보다 훨씬 높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미국의 세 업체가 가지고 있는 증착·식각·계측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즉 미국 장비 반입에 문제가 생기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계획했던 초미세회로 생산 라인 투자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게다가 네덜란드 ASML이 가지고 있는 EUV 노광 원천 기술에도 미국이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고 합니다. 첨단 장비 기술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어마무시'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더군다나 글로벌 시장에서는 반도체 장비 공급망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상황입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장비 공급망 마비를 공식적으로 언급할 만큼 영향을 받고 있고, 주요 장비사들도 이 문제를 인식 중입니다.
따라서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에서 핵심 장비들을 꼼꼼히 살펴본 것에는 아주 긍정적인 의미가 숨어있습니다. 단순히 삼성이 퀄컴·엔비디아의 3나노 칩을 생산한다는 사실을 넘어, 이 혼란의 시대에 반도체의 기본이 되는 장비 인프라 협력을 다른 나라에 비해 더욱 긴밀히 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될 수 있으니까요.
더 나아가 한국에 미국 주요 장비사들의 생산 거점이 늘어나 열악한 우리 반도체 생태계가 더 풍성해질 수 있는 기회를 기대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만남을 통해서 한미 반도체 동맹이 더욱 굳건해지길 바라면서 글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