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소연료전지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젊은 연구원들이 한꺼번에 대기업으로 이직을 했습니다. 청년 연구원의 유입이 감소하면서 연구원 찾기도 어려워 연구소 폐쇄까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의 연구개발(R&D) 산실인 기업연구소의 빠른 고령화에 기업 경쟁력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2030 연구 인력의 유입이 줄면서 기업의 기술 개발 속도는 물론 연구개발비 규모도 정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연구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견·중소기업과 지방 연구소들의 고령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돼 기업은 물론 자칫 국가 전체 기술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3일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의 기업연구소 연구원 인력 현황을 보면 2011년 13명이던 기업 평균 연구원 수가 2020년에는 절반 이상 감소한 7명을 나타냈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 기준 2011년 168명이던 기업 평균 연구원 수는 2020년 104명으로 감소했다. 중소기업은 같은 기간 6명에서 4명으로 줄었다. 산기협 관계자는 “기업 평균 연구원 수가 감소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특히 늘어나는 기업 수 대비 청년 연구원 유입 감소에 따른 연구원 수 부족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연구소의 인력 공백은 무엇보다 젊은 연구원들의 중견·중소기업 기피 현상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지방의 경우 이러한 기피 현상은 대기업도 피해갈 수 없다. 5세대(5G)와 6세대(6G) 등 차세대 네트워크 장비 개발사인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수도권을 벗어난 중견·중소기업은 아예 인력 수급 자체가 어렵다”면서 “인력 문제가 먼저 해결되지 않는다면 기술력을 확보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의 2차전지 제조사의 한 최고기술책임자(CTO) 역시 올 1월 열린 ‘국가필수전략기술 육성 및 지원을 위한 기업 간담회’에서 “우수한 젊은 인력들이 수도권을 벗어나려 하지 않고 있다. 대전조차 오지 않으려 하는데 어떻게 해야 지방 연구소로 인력을 유입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젊은 연구원이 부족한 가운데 그나마 있던 중소기업의 유능한 연구원들이 대기업이나 일부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로 몰리는 점도 연구소 인력 부족 현상을 가중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쏠림 현상에 바이오, 수소, 사이버 보안 등 이제 막 태동하고 있는 신사업 분야의 연구원 부족은 더욱 심각하다.
사이버 보안 업체의 한 연구소장은 “사이버 보안 분야의 경우 보안학과가 있는 국내 대학은 10개도 채 되지 않고 여기서 양성된 인력들마저 대부분 게임사나 대형 포털, 온라인 서비스 업종 등으로 유출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성장 동력을 책임지는 기업연구소의 고령화에 기업 R&D는 물론 기업 경쟁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기업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을 살펴보면 2019년 3.51%에서 2020년 3.70%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중견기업의 경우 같은 기간 2.25%에서 2.27%로 0.02%포인트 늘어나 연구개발비 증가 폭이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기업연구소의 산물인 기업 기술을 바탕으로 한 기술 수출도 2019년 137억 5600만 달러에서 2020년 127억 800만 달러로 줄었다. 기술무역수지비(수출/도입) 역시 같은 기간 0.77에서 0.75로 역성장 폭이 커졌다.
기업연구소 연구원의 고령화 추세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연구소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중견·중소기업 연구소의 빠른 고령화에 기업 경쟁력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산기협이 조사한 2012년부터 2022년 3월까지 기업 규모별 기업연구소 연구원들의 연령을 살펴보면 중소기업의 평균 연령이 대기업은 물론 전체 기업의 평균 연령보다 높았다.
현재 대기업 연구소 연구원의 평균 연령은 지난 10년간 36.1세에서 38.8세로 2.7세 높아졌지만 중소기업은 37.4세에서 41세로 평균 연령이 3.6세나 늘었다. 이는 전체 기업들의 평균 연령 증가분인 3.3세보다 더 높은 수치다. 중소기업만 보면 현재 기준 연구원들의 평균 연령이 이미 40세를 넘어선 것이다. 연구원 증가율에서도 중소기업은 30대 증가율이 3.4% 수준으로 거의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대기업의 30대 증가율은 19.5%였다.
이러한 연구소 인력 부족에 현재 R&D 수행 기업의 61.4%는 연구원 수 5인 미만의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또 기업연구소의 5년 생존율이 44.4%에 그치는 등 기업연구소의 절반 이상이 5년 안에 문을 닫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R&D 업력을 20~30년 이상 쌓아가는 기업은 전체 R&D 기업의 5~6% 수준에 불과하다.
국내 양자 보안 관련 업체의 한 대표는 “힘들게 괜찮은 인력을 찾아내도 결국 대기업이나 정부출연기관 같은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해 양자와 같은 도전적인 분야의 연구원 수급은 상당히 어렵다”며 “아직 생태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산업의 경우 예산 투입이 늘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관련 기업이나 연구기관·인력 등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