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바라보는 일본 시마네현의 이와미 은광. 이곳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6세기 말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임진왜란·정유재란을 일으킬 때 군자금으로 쓴 은을 대량으로 생산한 곳이다. 일본은 당시 국제 결제통화인 은으로 포르투갈 등 유럽과의 무역을 통해 부를 쌓고 조총도 많이 사들였다. 이와미 은광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시대가 시작된 17세기 초에는 볼리비아의 포토시 은광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위용을 자랑할 정도였다.
문제는 이 은광에서 쓰인 첨단 기술인 연은분리법(鉛銀分離法)이 우리나라에서 유출됐다는 점이다. 일본이 1533년 종단과 계수라는 조선 기술자를 빼 가 이 기술의 핵심 비밀을 알아채 사업화한 것이다. 실제 일본 에히메현에 있는 전범 기업인 스미토모화학 현관에는 ‘16세기 외국에서 들여온 회취법(灰吹法·연은분리법)에 의해 구리를 제련하는 기술에서 시작됐다’고 적혀 있다. 일본이 임진왜란·정유재란 당시 조선의 도공들을 대거 끌고 간 뒤 네덜란드 등 서양과의 도자기 무역에 나서고 18세기 인삼 재배 기술마저 빼간 것도 일제강점기로 이어진 배경이 됐다.
우리나라는 중종반정(1506년) 이후 은광 개발 금지와 기술자 천시 등으로 스스로 혁신 생태계를 걷어찼다가 번번이 형용할 수 없는 참화를 겪었다. 이렇게 과학기술을 우대한 나라는 흥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필히 쇠했다. 13세기 칭기즈칸의 몽골이 200만~300만 명밖에 안 되는 인구로 유라시아 대륙을 유린하며 역사상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것도 과학기술을 우대한 게 주효했다. 15~16세기 동양과 중동에 한참 밀렸던 유럽이 대항해·제국주의 시대를 연 것은 절박함에서 비롯된 기업가 정신이 바탕이지만 이슬람의 항해술과 중국의 나침반 등 선진 과학기술을 적극 받아들인 것도 한몫했다. 18~19세기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한 것도 특허 보호와 기술 사업화, 벤처 금융이라는 혁신 생태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중국이 글로벌 첨단 과학기술 인재와 기술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후 불과 40여 년 만에 첨단 기술 강국으로 탈바꿈한 데는 엄청난 연구개발(R&D)비를 쏟아부은 덕도 있지만 미국 등 선도국의 기술과 인재 사냥에 나서고 인수합병(M&A) 드라이브를 건 게 주요인이었다.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인공지능(AI)·생명과학 등 우리 기술과 인재도 지속적으로 빼 갔다. 중국이 다른 나라의 특허를 다반사로 침해하는데도 우리 연구계는 논문 위주 풍토라 스스로 기술을 유출하기도 했다. 서울공대의 한 교수가 특허도 안 내고 논문을 썼다가 곧바로 중국에서 이를 베껴 상업화한 게 단적인 예다.
경제안보·기술주권이 화두인 기술 패권 시대임에도 우리나라는 산학연의 핵심 인재 관리는 물론 글로벌 인재 유치에 취약하다. 국가정보원이 2017년부터 올해 2월까지 99건의 산업기술 해외 유출을 적발해 21조 4000억 원의 피해를 예방했다고 밝혔으나 실제 유출건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으로 추산된다. 미국·일본·유럽·대만·싱가포르 등에 비해 방어망이 허술하고 공격 전략은 미흡하다. 반도체 전문가인 유웅환 전 대통령직인수위원은 “중국 반도체사로부터 파격적인 조건으로 여러 번 영입 제의를 받았다”며 “핵심 인재들이 미국으로 가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고 암암리에 중국으로 가는 사례도 적잖게 봤다”고 전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과학자를 비롯 글로벌 인재 유치에도 팔을 걷어붙여야 하나 구호에 그치는 경향이 있다. 일부 해외 인재가 기업에 있으나 대학과 국가연구소(출연연)에서 활동하기에는 토양이 척박하다. 실제 세계적인 과학기술인을 대학 총장들에게 추천해도 ‘교수들이 탐탁지 않게 봐 괜히 분란만 생긴다’며 꺼리는 경우도 적잖게 봤다. 출연연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중국의 ‘만인계획’처럼 국가적으로 핵심 인재 관리와 유치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 정부가 진정 과학기술을 중시한다면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