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일정은 삼성전자 평택 공장에서 시작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면담으로 끝났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경청하는 미국 대통령의 모습이 행사 중 사진에 찍혔다. 한국 기업인에 대한 예우와 존경의 마음이 담긴 장면 같아 무척 인상적이었다. 두 행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각각 5분 남짓한 짧은 연설에서 약 40초에 한 번 꼴로 ‘감사하다(thank)’고 말하며 우리 대통령과 기업 총수들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세계 대통령이라고도 불리는 미국 대통령도 한국의 기업인을 이처럼 중요하게 여기는데 기업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너무나도 다른 듯하다. ‘기업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신세’라고 하던가. 기업인을 예비 범죄자로 만드는 형사처벌 항목은 경제 법률만 보더라도 2200개가 넘는다. 중대재해처벌법, 화학물질관리법, 최저임금 관련 처벌 규정 등의 경우 원청 기업이 하청 기업의 문제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등 처벌 수준도 무리하게 커지고 있다.
이에 더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으로 요약되는 배임죄도 기본적으로 기업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기업과 대표를 함께 처벌하는 양벌규정 때문에 빨간 줄(?)이 그어진 기업인들이 범죄자로 낙인찍혀 해외 출장에 애를 먹는다는 애로를 많이 접하고는 한다. 세계경제에 퍼펙트스톰의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 기업인에 대한 이런 ‘이중, 삼중 족쇄’를 빨리 풀어줘야 한다.
미국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일자리와 경제 상황은 국민들이 정권을 심판하는 데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삼성과 현대차의 미국에 대한 통 큰 투자는 조 바이든 정부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약 21조 원) 규모의 미국 반도체 투자를 집행할 예정이다. 또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미국 기업과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한미 기술 동맹을 이끌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또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카운티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기로 하고 2025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6조 300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조지아주는 중간선거의 격전지로 분류되는 지역인 만큼 우리 기업의 투자 계획은 미국 정치권에 작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관계는 기존의 군사 안보 동맹에서 더 큰 개념으로 진화하는 역사적 변곡점을 맞았다. ‘경제안보’라는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라벨(표식)을 바꿔 단 것이다. 이제 우리 기업의 결정은 단순히 해당 기업이나 경제의 문제가 아닌 더 큰 개념, 즉 양국의 안보와 국익의 문제가 됐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우 이런 통 큰 결정을 하는 사람은 결국 그룹의 총수다. 월급쟁이 사장님들과 달리 빅스텝에 대한 책임도 오너가 진다.
경제안보의 명운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우리 기업인들의 손에 달려 있게 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국익과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생각해야 한다. 기업인 사면·복권을 고민할 시간적 여유가 우리에게는 그리 많지 않다.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