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임금피크제(성과연급제)가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해 무효라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이번 판결로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인 사업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6일 퇴직자 A씨가 자신이 재직했던 연구기관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임금피크제 도입 과정, 절차 등이 아닌 제도 자체의 유무효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임금피크제가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제1항은 강행규정에 해당한다”며 “임금피크제를 전후해 원고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춰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해 무효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제1항은 임금, 임금 외의 금품 지급 및 복리후생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으로 노동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해당 조항에서 말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에 대해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경우에도 그 방법·정도 등이 적정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며 판단기준으로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1991년 B연구원에 입사한 A씨는 만 55세가 되는 2011년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았다. B연구원은 노사합의를 통해 2009년 정년을 만 61세로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만 5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임금을 일정 감액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A씨는 임금피크제로 인해 직급이 2단계, 역량등급이 49단계 강등된 수준의 기본급을 지급받게 됐다며 퇴직 때까지의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51세 이상 55세 미만 정규직 직원들의 실적 달성률이 55세 이상 정규직 직원들에 비해 떨어지는데, 오히려 55세 이상 직원들의 임금만 감액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B연구원 측은 고령자고용법에는 모집과 채용에서의 차별에만 벌칙(500만원 이하의 벌금) 규정이 있으므로 임금에 관한 차별 금지 규정은 강행 규정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은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노동자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한 고령자고용법상 연령차별금지 위반에 해당돼 무효인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1, 2심은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에 반해 무효로 판단하고 A씨의 손을 들었다. 재판부는 “B연구원의 직무 성격에 비춰 특정 연령 기준이 불가피하게 요구된다거나 이 사건 임금피크제가 근속 기간의 차이를 고려한 것이라는 사정이 없다”고 봤다. B연구원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당시 노조의 동의를 얻었다고 해도 취업규칙의 내용이 현행법에 어긋난다면 그 취업규칙은 무효라는 취지다.
이번 사건은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판결로 현재 진행 중인 관련 임금피크제 관련 사건 뿐만 아니라 이미 노사합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올 전망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300인 이상 기업의 46.8%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있다.
대법원은 “정년을 유지하면서 일정 기간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의 효력은 사안별로 달리 판단될 수 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나 하급심에 진행 중인 사건 관련 개별 기업들이 시행하는 임금피크제의 효력의 인정 여부는 임금피크제 도입목적의 정당성 및 필요성, 실질적 임금삭감의 폭이나 기간, 임금삭감에 준하는 업무량 또는 업무강도의 저감, 감액된 재원이 도입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