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위기를 이유로 화석연료 투자가 늘어나는 데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럽이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독립을 위해 석탄과 석유·천연가스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난 수십 년간 이어진 유럽의 에너지 정책을 근간부터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 연차 총회인 다보스포럼에서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에너지 안보를 제공하고 당면한 다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당하다"면서도 “이를 화석연료에 대한 대규모 신규 투자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화석연료 회귀를 경계했다. 미국 백악관의 존 케리 기후특사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에너지에 대한 유럽의 기본적 가정을 뒤집었다"며 "누군가가 우크라이나를 핑계로 대규모 (화석연료)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에너지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비싸질 수 있다고 생각할지언정 에너지 공급 자체에 대한 신뢰가 있었지만 이번 전쟁이 이 같은 믿음을 완전히 저버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는 물론 의존도 늘어날 수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의 다니엘 예르긴 부회장도 "지금은 위기관리 시기"라며 "상황이 더 나빠질 것으로 가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화석연료 소비는 이미 늘어나는 추세다. 글렌 릭슨 S&P글로벌상품인사이츠의 유럽전력분석팀장은 2023년 서유럽이 석탄에서 13GW의 전력을 생산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그가 전망했던 것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수치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인 아람코도 공급 부족을 메우기 위해 생산량을 대폭 늘리겠다고 밝힌 상태다. 지멘스에너지의 조 카이저 회장은 "북해의 시추 작업을 비롯해 다시 테이블에 오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많은 일들이 다시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