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기업이 윤석열 정부 5년간 투자를 약속한 규모가 1000조 원을 넘었다. 기업들은 새 정부의 ‘민간 주도 경제’에 대한 화답과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 따른 미묘한 여론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해 통 큰 투자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긴축발 쇼크가 한창일 때 공격적 투자에 나서는 것은 ‘미래 생존을 위한 도전’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50조 원의 그룹 투자에 대해 “목숨 걸고 하는 것”이라고 말한 대목은 기업의 위기감과 각오를 잘 보여준다. 패권 전쟁이 벌어지는 글로벌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요국 기업들은 매머드 투자와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각국 정부는 전략산업과 주력 기업의 명운이 국가 존망과 연결된다고 보고 기술 초격차 등 경쟁력 확보를 위해 천문학적 지원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은 국제 질서 변화와 시대정신을 외면하고 권력 싸움과 포퓰리즘 경쟁에 매몰돼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패배 이후에도 반성하기는커녕 다수 의석으로 입법 폭주를 거듭하고 있다. 새 정부 발목 잡기도 모자라 집안 싸움으로 빠져들고 있다.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이 최근 내로남불·팬덤 정치에 대한 반성과 성 비위 인사 징계, 586세대 용퇴 등을 주장했으나 당 주류 지도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되레 박 위원장이 27일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과 민주당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사과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민주당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무시하고 국회의장뿐 아니라 법사위원장까지 모두 차지하려 하고 있다. 여당이 된 국민의힘도 협치 방안이나 정책 대안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안이하게 즐기는 ‘웰빙 정당’의 구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여야는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등 선심 정책 경쟁에 주력하고 있다.
새 정부는 대기업·중소기업 관계자들과 잇따라 만나 적극 돕겠다고 외치고 있으나 아직까지 실질적 지원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기업 투자를 위한 파격적 지원책을 꺼내고 규제·노동 개혁에도 착수해야 한다. 국회도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입법 활동에 초당파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