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올 국세 중 '법인세 비중 26%' 갈수록 늘어…조세경쟁력 7단계 뚝

[다시 기업을 뛰게하자]

1부. '다이내믹 코리아' 기업에 달렸다

<5> 세제·에너지 정책 다시 짜라 - 역주행하는 법인세

文정부 조세경쟁력 33위 추락할때

美는 법인세 내려 15단계 올라 20위

윤석열 정부 법인세 감면 나섰지만

국회에 막히면 경쟁력 제고 하세월

'0.1% 대기업'이 법인세 60% 차지

한 곳이라도 위기땐 국가 전체 위기

稅 인하로 고용·소득 세수 선순환을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경남 진주를 방문해 파격적인 법인세 인하 방안을 발표했다. 전국 234개 기초자치단체를 발전 정도에 따라 4개 그룹으로 나눠 가장 낙후된 1그룹에는 법인세를 10년 동안 70% 감면해주고(지방 이전 대기업 기준) 2그룹과 3그룹에도 각각 50~30%씩 법인세를 깎아주는 대책이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이 대책이 제대로 작동만 하면 기업의 투자 의욕을 고취시키면서 지방균형발전도 동시에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노 전 대통령도 직접 챙길 정도로 상당한 의욕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묘수’로 보였던 이 대책은 결국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초됐다. 법안을 심사해야 하는 의원들이 자신들의 지역구를 서로 높은 그룹에 넣으려고 다투다가 갈등이 커지면서 아예 입안조차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듬해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감면 방안도 결국 없던 일이 됐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추경호 부총리가 ‘기업의 모래주머니를 벗겨 주겠다’며 법인세 완화 방침을 공개했지만 대기업 감세에 부정적인 민주당이 반대하면 돌파할 만한 대책이 없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저성장 트랩’에 갇힌 우리나라가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려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방안은 민간에 대한 규제 철폐와 법인세 완화밖에 없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고령화 여파로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하는 가운데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민간의 혁신을 통한 생산성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압축 성장을 이끌었던 관(官) 주도 혁신도 이제는 산업이나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실제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법인세 분야의 조세 경쟁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26위에서 지난해 33위로 4년 새 7단계나 하락했다. 같은 기간 과감하게 법인세 인하를 단행한 미국의 경쟁률이 35위에서 20위로 급등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인상하고 과표 구간도 기존 3단계에서 4단계로 늘리는 등 오히려 ‘역주행’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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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역주행에 따라 우리 기업들이 부담하는 법인세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법인세 인상 전인 2017년 약 59조 2000억 원이던 법인세 세수는 2019년 72조 2000억 원 수준까지 뛰어올랐다. 지난해는 코로나19 영향 속에서도 약 70조 4000억 원까지 불었다. 전체 국세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7년 22.29%에서 2019년 24.58%까지 뛰었다. 우리나라 살림의 법인세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소수 대기업에 쏠린 조세 편중도는 이보다 더 심하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국세청에서 받은 ‘2020년 귀속분 법인소득 1000분위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소득 상위 0.1% 대형 법인(838곳)이 납부한 총 부담세액은 32조 6370억 원으로 전체 법인세(53조 5714억 원) 중 약 60.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삼성전자, 현대·기아차, SK하이닉스, LG전자 등 5개 기업이 낸 법인세 비중만 전체의 9%에 이르렀다. 이들 중 한 기업이라도 위기에 빠지면 나라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고(高)법인세 체계가 기업 활력은 물론 장기적으로 세수 자체를 낮출 수 있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통상 세제 전문가들은 법인세율과 세수의 관계가 ‘역 유(U)자’ 곡선을 그린다고 분석한다. 법인세율을 올리면 당장은 세수가 늘어나는 ‘보너스’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기업의 투자를 줄여 오히려 세수가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기업이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의 법인세 부담은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세금을 인하하면 민간이 성장하고, 경제가 성장하면 과표 구간에 진입하는 납세자가 늘어나 고용과 소득 세수가 모두 늘어나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며 “법인세율을 낮추면 당장 세수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 세수에 긍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새 정부도 올해 세법개정안에 법인세 완화 방안을 담겠다는 복안이다. 기재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 4단계인 법인세 과표 구간을 선진국 수준으로 단순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과표 구간이 단순화되면 법인세 최고세율도 지금보다 낮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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