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최근 ‘임금 삭감만을 목표로 한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단하면서 노사 관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노동계가 하투(夏鬪)에서 임금피크제 폐지를 전면에 내걸 수 있어 여진이 얼마나 이어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2016년 공공에 이어 민간까지 임금피크제를 주도적으로 확산시킨 고용노동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노사 문제를 책임지고 풀어야 할 주무 부처라는 점에서 고용부의 ‘책임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노사 혼란이 예견된 일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6월 기준 300인 이상 기업 절반이 도입한 임금피크제에 대해 법원 판례가 계속 엇갈렸기 때문이다. 기업마다 소송 쟁점도 제각각이라 ‘내 사업장의 일’인지 딱 떨어지게 적용하기도 어렵다. 고용부도 올 1월 작성한 자체 평가 보고서에서 노사 갈등 요인에 대한 모니터링 사안으로 임금피크제를 적시했다. 한국노총의 공공부문노조협의회가 임금피크제 폐지 등을 대정부 6대 요구 사항 중 하나로 제시하면서 노정 갈등을 키울 문제점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고용부는 임금피크제에 무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고용부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9쪽 분량으로 임금피크제 현황 조사를 발표했다. 자료에는 정년유지형 도입 비중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하지만 2020년부터 엑셀로 수치만 잔뜩 나열된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정년유지형 등 유형별 수치는 전무하다. 대법원이 ‘임금 삭감만을 목적으로 한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단했으나 정년유치형 도입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통계조차 찾기 어렵다.
뒷짐만 지고 있는 고용부의 태도에 경영계와 학계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고용부는 노사 합의 사항인 임금피크제에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 없다’고 일찌감치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 그러나 엇갈린 법원 판례가 이어지고 있는데도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다면 결국 기업의 혼란을 막을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고용부가 지금이라도 임금피크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위원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노사는 임금피크제 등 임금·단체협약에서 합의에 실패하면 노동위에 조정 신청을 할 수 있다. 노동위가 임금피크제를 이익이 아닌 권리 분쟁으로 판단해 조정하지 않으면 법정 싸움까지 나서야 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이 3일 서울 소재 한 사업장을 방문한다. 임금피크제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취지다. 고용부 수장이 직접 나서 의견을 듣고 해법을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움직임이다. 하지만 보여주기식 행보에 그친다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고용부는 임금피크제를 시작으로 더 큰 파도를 준비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임금피크제와 불가분의 관계인 직무·성과급제 확산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계는 호봉제 체계에서 불가피하게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는 입장이다. 임금피크제가 어렵다면 대안으로 호봉제에서 직무급제로 임금 체계를 바꿀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고 요구한다. 하지만 노동계는 공공 부문 중심으로 직무급제 확산이 불가하다고 맞서고 있다. 반발의 세기는 과거 정부에서 확인됐다. 혼란을 줄이고 노사를 화합으로 이끌려면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