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밀가루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26.0% 올랐습니다. 쉽게 말해 5000원짜리가 1년새 6300원으로 뛴 것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속도입니다. 이상기후에 따른 작황 불안으로 지난해 12월 8.8% 오르더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시작되며 지난 3월엔 13.6% 뛰었고, 전쟁이 길어지며 5월 26.0%까지 단숨에 치솟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끝이 아닌 듯합니다. 곳곳에서 “밀가루 가격이 하반기에 더 오를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밀가루값이 왜 더 오를 수밖에 없는지, 소비자 부담을 덜기 위해 정부가 발표한 대책과 예상되는 효과는 무엇인지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전쟁이 끌어올린 국제밀값의 영향을 제분업체가 하반기부터 본격 부담하게 됩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거래되는 선물 가격은 약 4개월 뒤에 제분업체가 실제 지불하는 현물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전쟁 발발로 밀값이 부셸당 약 8달러에서 12.9달러로 뛴 것이 지난 3월 초이니 이제 우리나라에 본격 영향을 미칠 때가 온 겁니다.
여기에 환율까지 올라 제분업계의 부담이 가중됐습니다. 환율이 올라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같은 양의 밀을 수입하려해도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죠. 제분업계는 “1996년, 2007년에도 국제밀값이 치솟았지만, 그때는 환율까지 덩달아 뛰지는 않았다”라며 “밀값과 환율이 동시에 오르는 지금이 경영 부담이 훨씬 크다”고 말합니다.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말입니다.
정부도 제분업계의 부담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연말까지 수입 밀에 할당관세 0%(기존 1.8%)를 적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세금 부담을 덜어줘 생산비를 줄이는 데 기여하겠다는 것이죠.
하지만 정책의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지난해 한국에 수입된 모든 제분용 밀(미국·호주·캐나다·터키·프랑스·독일산)에는 이미 관세가 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정부의 이번 대책을 지난해 밀 수입 상황에 대입하면, 할당관세 제로가 적용되는 물량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이 업계가 밀 수입처를 다변화해 원가 부담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밀가루값도 다소 안정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업계는 밀 수입처 선정 기준에는 가격뿐만 아니라 균일화된 품질, 안정적인 공급망 등이 모두 포함된다며 ‘수입처 다변화’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업체의 제품가 인상이 불가피하자 정부는 결국 국고를 직접 투입하는 고육책을 발표했습니다. 하반기부터 밀가루 가격 상승분의 70%를 정부가, 20%는 업체가 부담하기로 한 것입니다. 가령 밀가루 가격을 1000원에서 2000원으로 올려야 한다면 정부가 상승분(1000원)의 70%인 700원을 업체에 지원, 업체는 상승분의 20%인 200원을 자체 부담하게 됩니다. 최종적으로 소비자가 지불하는 밀가루값은 100원만 오른 1100원이 됩니다. 다만 국제밀값 상승세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언제까지 이런 부담을 감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