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김태기의 인사이트]물가안정에도 비결이 있다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전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시장 개방해 수출·수입 규모 키우고

해외자원 조달 다변화해 위험 분산

규제완화로 물가안정 성공 이끌었듯

尹정부 '민간 주도 경제' 밀고 나가야





물가를 올리는 공급 충격에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가 있다. 같은 나라라고 해도 정책에 따라 다르다. 우리나라는 지금과 비슷한 상황인 1970년대 아랍발(發) 석유 가격 폭등 당시 물가 상승률이 미국과 유럽보다 2배 이상 높았다. 1980년 기준 한국은 28.7%, 미국 13.55%, 유럽 13.52%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러시아·중국발 공급망 차질로 글로벌 물가가 급등하는데 한국은 물가 상승률이 미국과 유럽의 2분의 1 정도로 선방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통계에 따른 글로벌 인플레이션 지표(스태티스타)를 보면 2022년 4월 기준 한국은 5% 이하였지만 미국과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10%에 가깝다. 한국은 생산자물가지수, 소비자물가지수, 생활필수품이 대상인 생활물가지수 모두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석유 등 원자재를 해외에 의존하는 만큼 한국은 물가 안정에 취약하다. 어떻게 약점을 줄였는지 알면 지금의 물가 불안에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어떤 나라든 물가 안정을 위한 경제 체제의 구축은 정책의 혁신을 요구한다.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가 그래왔다. 바깥으로는 시장 개방을, 안으로는 규제 완화와 유통 질서 개선 등을 추진했다. 시장 개방은 수출과 수입의 규모를 키움으로써 물가 안정에 기여했다. 기업은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및 중간재는 물론 소비재의 구매와 생산에서 규모의 경제라는 이점을 살렸다. 게다가 해외 자원의 조달과 개발을 다변화함으로써 위험을 분산했고 로봇의 활용 등으로 자동화를 적극 추진했다. 덕분에 라면 등 ‘국민 식품’은 밀과 식용유 등의 폭등에 비해 가격 인상 폭을 낮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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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후부터 문재인 정부 이전까지 경제정책은 소비자 편익을 중시해 규제 완화와 유통 질서 개선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공기업의 민영화와 유통 단계의 축소 및 유통 산업의 현대화 등이 그랬다. 그 결과 전기·통신·대중교통 등 공공요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저렴해 생산 비용을 낮췄다. 유통 산업의 규제 완화는 혁신 경쟁을 촉발해 일자리 창출은 물론 소비자물가도 안정시켰다. 초기에 이마트 등 대형 마트가, 지금은 쿠팡 등 온라인 거래가 미국 등 선진국도 배워갈 정도로 급성장했다. 유통 기업의 경쟁은 생산 비용의 증가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생산성 향상을 자극했다. 유통 산업이 프랜차이즈화를 넘어 플랫폼화되고 택배 산업이 급성장해 ‘배달의 강국’이라는 칭호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시장 개방과 규제 완화의 흐름은 문재인 정부의 등장으로 바뀌었다. 때아닌 반일민족주의와 정부 주도 경제는 자원의 해외 조달과 개발을 어렵게 만들었다. 반면 원자재부터 소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커져 물가 안정에 취약해졌다. 게다가 소득 주도 성장이나 공정경제 등으로 소비자 편익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탈(脫)원전은 전기 요금의 인상 요인으로, 공공 부문의 확대와 낭비는 공공요금의 인상 요인으로 작용했다. 택배 등에서 보듯이 민간 서비스도 공공서비스화하는 분위기 때문에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 물가의 불안은 통계보다 더 커졌다.

윤석열 정부는 경제위기의 태풍이 마당까지 몰려왔다며 긴장하고 있다. 세금 감면을 통해 가격을 내리고 물가 급등의 충격이 큰 취약 계층에 대한 소비 쿠폰 등으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좀 더 큰 그림이 필요하다. 물가 안정의 성공 경험에 비춰보건대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민간 주도 경제, 규제 완화, 경제 안보 등의 확실한 추진이 물가 안정의 비결이라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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