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문제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동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회사 경영에서 물러나고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이사장이 된 후 깊이 천착하는 화두 중 하나다. 그는 뉴욕타임스(NYT)가 1997년 1월 보도한 기사에서 매년 310만명이 전염병에 따른 설사로 사망하며, 그 중 상당수가 어린이라는 사실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는 2015년 테드(TED) 강연에서 “몇십 년 내 1000만명 이상을 사망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전쟁보다는 전염성이 높은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현재의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예견하고 경고한 셈인데, 이 강연 영상은 팬데믹 이후 조회수가 급격히 늘었다.
게이츠는 신간 ‘빌 게이츠, 넥스트 팬데믹을 대비하는 법’에서 이런 고민을 토대로 정부·과학자·기업·개인이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전염병 확산이 팬데믹으로 가지 않을 방안을 이야기한다. 그는 제대로 방비한다면 앞으로 또 다가올 팬데믹을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책에서 가장 먼저 강조하는 건 세계보건기구(WHO)의 관리 하의 전 세계적 ‘글로벌 전염병 대응·동원팀(GERM)’의 조직이다. 그는 코로나19 사태의 발발은 “똑똑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전 세계가 미리 준비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를 위한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약물과 백신 개발, 데이터 시스템, 외교, 컴퓨터 모델링, 커뮤니케이션 등 여러 분야의 인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급여와 장비 등에 드는 비용은 연간 10억달러로 추산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수조 달러의 돈을 쓴 걸 고려하면 엄청나게 싼 가격이다.
그리고 팬데믹이 선포된 후 6개월 안에 백신을 만들고 전 세계에 보급해야 한다고도 지적한다. 코로나19가 발생한 후 1년만에 여러 백신이 개발됐지만 그보다 빨리 만들어서 대량생산해야 팬데믹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보급 과정서 저개발국, 저소득층이 선진국, 부유층보다 치료 받을 기회가 적어지는 ‘보건 격차’를 없애는 일이 중요하다. 저소득 국가에서 코로나19 백신의 접종률은 전체 인구의 8%에 그쳤다. 게이츠는 “가장 비싼 값을 부르는 사람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상황이 빚어지지 않고, 공중보건 쪽이 가장 큰 혜택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을 마무리하며 게이츠는 전염병 확산시 ‘액션 플랜’을 제안한다. 우선 전염병이 감지되면 7일 이내에 모든 국가, 모든 사회가 통제 조치를 시작하고, 100일 이내 전염병이 팬데믹으로 번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6개월 안에 모두에게 충분한 양의 백신을 생산해 공급하는 것이다.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