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 칼럼]공화당의 총기사고에 대한 해법

폴 크루그먼 ?뉴욕 시립대 교수

총기규제 대신 무장경비원 주장하며

'시민적 의무'에 강한 혐오감 드러내

여론 수습때까지 사회적 논의 차단

입법 흐지부지하게 만들려는 노림수





가장 최근의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해 공화당이 보인 반응 가운데 어느 것이 최악인지 가리기 쉽지 않다. 늘 그렇듯 테드 크루즈 상원 의원은 무장 경비원을 교내에 배치시켜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으로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았다.



만약 필자에게 묻는다면 공화당이 내놓은 가장 소름 끼치는 반응은 댄 패트릭 텍사스주 부지사의 말이다. 그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장 경비원이 배치된 정문을 통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교정에 들어오지 못하게 학교 건물의 경비 태세를 대폭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도 아닌 평시에 학교를 철벽 경비 대상으로 지목한 패트릭의 주장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수 세대에 걸쳐 미국인들의 성장기 경험 틀을 지은 공립 교육에 이 같은 조치는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페더럴리스트지의 한 기자는 염려할 필요 없다고 잘라 말한다. ‘가정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자녀에게 홈스쿨링을 시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만약 크루즈와 패트릭을 비롯한 공화당 인사들의 제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자유의 땅’으로 불리는 미국은 거대한 무장 캠프로 전락한다. 공공의 공간을 공화당 스타일로 보호하려면 해병대 병력과 맞먹는 중무장한 국내 방위 조직을 필요로 한다. 이들이 중무장을 필요로 하는 것은 방탄복과 반자동무기로 무장한 총격범들과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조치가 필요할까. 미국 바깥에서는 총기 난사 사건이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유독 미국에서 대규모 총기 사건이 흔한 이유는 또 무엇일까. 정신 상태가 불안정한 18세 청소년이 군 사용 자동화기와 방탄복을 손쉽게 구할 수 있을 만큼 총기 규제가 허술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에 공화당은 아니라고 외친다. 패트릭은 총기 규제가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워낙 거친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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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봤자 소용없는 일이겠지만 만약 유력한 진보 정치인이 “우리가 겪는 심각한 사회문제는 미국인들이 워낙 거칠기 때문”이라고 폭언을 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상상해 보라. 분명 끝없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공화당 인사가 똑같은 말을 하면 파장이 거의 일지 않는다.

기록을 남기기 위해 한마디 하자면 필자는 개체로서의 미국인이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외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필자는 미국인들이 평균적으로 대단히 유쾌하고 어울리기 좋은 상대라고 생각한다.

미국 사회의 특징은 선량하지 않은 사람들이 중무장을 하기가 너무 쉽다는 점이다. 이제 모두들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공화당의 반응이 실질적인 정책안으로 연결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들은 이번 참사가 뉴스권에서 사라질 때까지 대중이 합리적 토론을 듣지 못하도록 차단하기 위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요란스러운 소음을 내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총기 난사 사건과 경악할 만큼 높은 미국의 총기 관련 사망률을 그들의 이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꺼이 치러야 할 대가로 간주한다.

그런데 그 이념이라는 게 뭘까. 필자는 미국의 독특한 총기 문화에 관한 논의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편협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시민적 의무라는 개념에 가해지는 공격을 목격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시민적 의무란 동료 시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특정한 규칙을 지키고 약간의 행동 제약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완강한 총기 규제 반대를 팬데믹 상황에서 불거진 강력하면서도 지극히 당파적인 마스크 착용 반대와 세정제에 인산염 첨가를 금지하는 환경 규정에 대한 거친 저항과 밀접하게 연결된 현상으로 바라봐야 한다. 대체 시민적 의무라는 개념에 대한 혐오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미국 정치판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처럼 이 역시 의심할 나위 없이 인종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빠진 게 있다. 바로 미국적 전통이다. 홈스쿨링 이야기가 들리면 보편적 공교육이라는 아이디어의 산실이 미국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환경보호는 한때 초당파적인 이슈였다. 대기청정법은 1970년 단 한 명의 반대도 없이 상원을 통과했다.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가공할 총질은 잠시 접어두자. 사실 올드 웨스트에 속한 대부분의 타운은 그레그 애벗이 주지사로 재직 중인 텍사스보다 한층 엄격한 총기 소지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필자는 문명사회의 기본적 룰에 대한 거부감이 어디서 오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입만 열면 “자유”를 외치는 바로 그 사람들이 미국을 곳곳에 세워진 검문소에 무장 경비원들이 버티고 선 영화 ‘헝거게임’ 속의 악몽 같은 반이상향처럼 만들려 애쓴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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