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한국의 우주산업 지원은 지나치게 연구개발(R&D)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진정한 산업화 수준으로 나아가려면 기업이 적극적으로 기술 개발에 참여하고 프로그램을 기획·추진할 수 있도록 정책의 전환이 필수적입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전 세계 우주산업 시장 규모는 2040년 1368조 원대로 연평균 5.3%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도 우주산업이 민간기업 주도로 재편되는 뉴 스페이스 시대에 대비해 체계적으로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7일에는 지방자치단체와 ‘우주산업클러스터’를 개방하고 우주 분야 인력 양성을 촉진하는 내용의 우주개발진흥법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우주산업 개발 수준은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매출을 기준으로 보면 전 세계 시장의 0.1% 수준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학계와 업계에서는 우주기술의 민간 이전을 서두르고 기업의 역할과 수익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뉴 스페이스 시대에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주산업, 기업 수익 창출로 이어져야=패널들은 우주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우선이라고 꼬집었다. 방효충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우주산업의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구축해왔다기보다는 단기간에 지구 관측 위성의 해상도를 높이는 부분에 편중된 정책을 펼쳐왔다”고 말했다. 방 교수는 “전략적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행성 탐사, 통신 위성, 그밖의 다른 우주 서비스 영역까지 제대로 확장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김병진 쎄트렉아이 이사회 의장은 “정부 정책에 따라 기업들도 R&D에 집중해왔지만 이는 ‘기본 체력’을 기르는 것에 불과하다”며 “이것이 매출과 수익 창출로 이어지지 못하면 학생을 예시로 들었을 때 수업을 듣고 학점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우주개발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재투자를 통해 일자리까지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주정책 총괄할 전담 기구가 필수=기업들이 주축이 되는 우주산업 개발을 위해서는 우주 정책을 총괄할 전담 기구가 필수적이라고 패널들은 제언했다. 현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국방부·산업통상자원부 등 우주 관련 부처가 통합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방 교수는 “우주산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기구를 가진 나라가 70개국 정도 되는데 우리나라에 아직 없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전담 기구를 통해 효율적이고 경쟁력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허환일 충남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지금까지는 우주개발 전담 기구의 임무와 권한·책임 등에 대한 논의가 많지 않았다”고 짚었다. 허 교수는 “전문성과 대표성을 함께 갖춘 전담 기구를 통해 독립적인 우주개발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는 예산을 편성할 수 있어야 한다”며 “대부분 5년 단위인 우주개발 진흥 계획을 미국과 일본처럼 장기적 관점의 프로그램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IT 산업 등 기존 경쟁력 활용 가능=패널들은 뉴 스페이스로 패러다임을 전환해 그에 적절한 정책적 지원이 이뤄지면 국내 우주산업도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각 기업의 장점을 살리고 해외 업체와 협력할 기회가 열리면 세계 시장에서 겨룰 만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최정열 부산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우주 선진국과 협력하려면 기술 수준이 어느 정도 맞아야 한다”며 “우리나라도 국내 인력을 중심으로 우주개발을 주도하되 사안에 따라 해외 업체와 활발히 교류하고 미국의 조달 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우주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정보기술(IT) 산업에 강점이 있는 만큼 연계되는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류장수 AP위성 대표는 “IT 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어 이를 우주산업에 접목해 뉴 스페이스 시대에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5세대(5G), 6세대(6G) 기술, 드론,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자율자동차, 로봇 등 사물지능통신(M2M) 수요의 급증에 대비해 위성통신 서비스 산업을 육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 대표는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를 사례로 들었다. 그는 “스타링크 프로젝트는 전송량 향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한국 기업들은 세계 위성통신 시장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스마트폰과 소형 모빌리티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비정지궤도 대형 통신위성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며 “예산이 적기에 투입된다면 전후방 산업 파급효과도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