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空間). 직역하면 비어 있는 사이로 해석할 수 있잖아요. 설계 도면으로 그리면 단순한 네모로 표현되는 공간이라는 대상을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가, 그게 저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전범진 스튜디오베이스 소장은 1990년대 중반 뛰어든 현장에서 공간을 해석하는 법을 바닥부터 깨우쳐온 공간 디자인 전문가다. 건축학과를 나와 건축사 면허를 취득한 뒤 설계 회사에서 공간을 이해하는 주류 건축가들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걸어왔다.
‘맨땅에 헤딩’하듯 현장에서 공간과 건축에 대한 경험을 쌓은 그의 스승은 다름 아닌 유정한 NEED21(니드21) 소장이다. 유 소장은 건축물의 내외부를 모두 고려한 공간 디자인의 개념을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인물로 노출 콘크리트 건축 스타일에 방점을 찍은 니드21의 사옥 ‘회화재’를 선보인 이로 유명하다. 전 소장은 유 소장 아래에서 10년간 일을 해오다 2006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사무실을 차렸다. 훗날 오뚜기·아모레퍼시픽·CJ 같은 대기업은 물론 편강한의원·이성당처럼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B2C 브랜드가 “우리만의 공간을 디자인해달라”며 찾아오는 스튜디오베이스의 시작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롭게 태어난 공간들 가운데 아모레퍼시픽의 의뢰로 탄생한 이니스프리 명동 플래그십스토어를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로 꼽았다. 자연을 담은 그릇이라는 브랜드 개념을 온실 모티브로 풀어낸 그곳은 전 소장을 ‘스타 공간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하게 한 첫 프로젝트였다.
“공간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제가 애정하는 많은 것들이 곳곳에 배치됩니다. 음악이나 영화 등 저를 채우는 많은 것들이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을 향해 적재적소에 배치되지요.” 전 소장은 즐겨 듣는 음악이나 좋아하는 영화 같은 취향은 물론 레스토랑과 와인바를 운영했던 경험도 공간을 재해석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뚜기의 롤리폴리꼬또는 내부 가구부터 식기, 메뉴, 직원들의 의상까지 모두 전 소장의 숨결이 닿은 결과물이다.
공간 디자인 한길을 20여 년간 걸어온 전 소장은 건물의 내부와 외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건축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쏟는 힘을 굳이 구분하자면 내부에 50, 외부에 50을 배분한다는 전 소장은 자신을 건축가로 규정하지 않으면서도 건축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드러냈다. 그는 “자연환경이라는 제약 속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보면 주변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건물을 많이 본다”며 “도심이든 산속이든 이 건물이 어떠한 맥락, 즉 어떤 ‘터 무늬’에 놓여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 건축의 핵심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