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이재웅 전 쏘카 대표는 지난 2019년 차량공유 플랫폼 ‘타다’와 관련 택시기사들의 분신자살이 이어지자 소셜미디어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이 전 대표는 “타다가 전국 택시매출의 1%도 안 되는 데 모든 책임을 돌리는 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며 “신산업으로 인해 피해받는 산업은 구제가 필요하고, 그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그는 이후 렌터카 사업자에 대한 운전기사 알선을 전면 불허하는 이른바 ‘타다 금지법’의 철퇴를 맞고 사업을 포기했다.
3년 전의 일을 다시 꺼낸 이유는 새 정부의 규제혁신 방안에 중요한 알맹이 중 하나가 빠졌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규제개혁이 곧 국가성장”이라고 최우선 국정과제라는 의지를 표명했고, 한덕수 국무총리는 “잠재성장률 0%의 위기를 타개해야 한다”고 규제혁신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한 총리는 지난 14일 대통령 주도의 ‘규제혁신전략회의’, 덩어리 규제를 개선하는 ‘규제혁신추진단’, 규제를 받는 국민 시각에서 제로를 변경하는 ‘규제심판제’ 등 이른바 ‘3종 세트’도 신규 도입한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전 부처가 규제개혁 과제를 발굴하고 처리해나갈 것”이라며 의욕도 내비쳤다.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에도 과연 규제혁신이 제대로 될지 현장에선 의문의 시각이 적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규제 전봇대 뽑기’, 박근혜 정부의 ‘손톱 밑 가시 제거’ 등 이전 정부에서도 구호는 요란했는데 실제 산업현장에서의 체감도는 낮았기 때문이다.
애초 언급했던 ‘타다-택시’ 갈등 사태로 돌아가 보자. 이 전 대표는 ‘타다’가 4차 산업혁명의 주된 비즈니스모델 중 하나인 ‘플랫폼 사업체’라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플랫폼 기업이 택시면허를 매입해 사업한다면 “전통적인 여객운수업을 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정부와 정치권은 택시기사의 생계가 달렸던 만큼 플랫폼 기업에 면허 매입을 요구했고, 결국 이 전 대표는 좌절감을 안고 업계를 떠났다. 비단 ‘타다’뿐 아니다. 법률서비스 ‘로톡’ 등 플랫폼 업체는 전통산업과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데 정부는 어느 한쪽 손도 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규제는 풀지 못하고 신산업은 좌절감에 무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규제혁신’이 힘을 발휘하려면 전통산업과 신산업 간 갈등을 해결하고 국민적 합의를 모색할 현실적 방안부터 찾아야 한다. 규제를 풀면 전통산업 종사자의 거센 반발과 피해가 불을 보듯 뻔한 만큼 이에 대한 대책 마련과 논의 없이 규제 개혁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들 전통산업군이 내부결속력과 저항력이 강할 경우에 정치권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나설 텐데 결국 ‘타다 사태’와 같이 개혁은 후퇴하고 규제는 여전한 초라한 결과물만 남을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로 신산업이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것이라는 말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신산업은 필연적으로 전통산업 종사자의 생존 문제를 건드리게 된다. ‘한국경제의 도약’이라는 거창한 비전은 ‘누군가의 생존투쟁’ 앞에서 힘없이 고꾸라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가 규제혁신을 위해 산업 간 갈등 해소 방안부터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족이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요즘처럼 택시 잡기가 어려운 시기에 승합차용 렌터카에 대한 운전기사 알선을 허용하는 ‘타다 서비스’가 있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