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에 대한 경고음이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높아지고 있다. 내년에 닥칠 경기 침체를 우려하던 미국에서 ‘당장 올해 경기가 후퇴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 경제의 급랭과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확대는 한국의 경기 진단을 더욱 암울하게 하는 연쇄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외 경제 상황이 당분간 ‘시계 제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경기를 가늠하는 지표들도 하나같이 침체를 향하기 시작했다.
16일(현지 시간) 외신들은 경기가 당장 올 하반기부터 꺾일 수 있다는 위기감이 미국 시장에 감돌고 있다고 전했다. 전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전만 해도 경제학자 등 다수의 전문가들은 미국 경기가 침체기에 접어드는 시점을 내년으로 잡았다. 하지만 연준이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을 밟으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연준의 공격적인 긴축으로 그동안 경기를 떠받쳐온 유동성 감소와 미국을 덮친 인플레이션 파고의 심각성이 현실로 다가오자 미국 경제가 더 빠른 속도로 활력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가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데스티네이션웰스매니지먼트의 마이클 요시카미 창업자는 미 CNBC 방송에 출연해 “(침체의 깊이가) 얕은 수준이겠지만 당장 올 3분기에 경기 침체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투자은행 JP모건도 “미국에서 경기 침체가 발생할 확률이 85%에 달한다”고 내다봤다.
실물경제지표들도 경기 침체의 징후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날 발표된 5월 미국의 신규 주택 착공 건수는 4월보다 14.4%나 급감했다. 기준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국 주택담보대출 30년 고정금리가 6월 5.78%로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대출 비용이 치솟으면서 위축된 주택 구매 심리가 벌써 주택 공급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소매판매는 5월에 전달보다 0.3% 감소해 지난해 12월 이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역성장했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이 내놓은 6월 제조업활동지수는 -3.3으로 2020년 5월 이후 2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 제조업 경기가 위축되기 시작했음을 나타냈다.
미국인들의 경기 인식도 얼어붙었다. 미국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56%가 ‘미국 경기는 이미 침체에 빠졌다’고 응답할 정도다. 캐나다 금융회사 ‘인더스트리얼얼라이언스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의 세바스티앵 마크마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기는 이미 후퇴하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의 기본 전제”라고 분석했다.
세계 최대 경제국이자 핵심 교역국인 미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 등 대외 변수 악화에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도 점차 암울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17일 펴낸 ‘6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국내 경제에 대해 “투자 부진 및 수출 회복세 약화 등 경기 둔화가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고용 회복이 지속되고 대면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내수가 완만하게 개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외 여건 악화 및 높은 물가 상승세로 경제가 둔화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와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 이에 따른 각국의 금리 인상 등 국제 금융시장 변동성 및 글로벌 경기 하방 위험이 더욱 확대됐다는 것이 정부의 인식이다.
국내 거시 지표들도 ‘경제위기’를 가리키고 있다. 5월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21.3% 증가한 615억 달러로 역대 최대 실적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간 수입이 32% 증가한 632억 달러로 불어나면서 무역수지는 17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그나마 종전에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던 수출은 화물연대 파업 등의 여파로 이달에 한 자릿수대로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기재부는 예측했다.
5월 소비자물가도 5.4% 증가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이후 처음으로 5%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4월에는 코로나19 영향이 본격화한 2020년 2월 이후 2년 2개월 만에 생산·소비·설비투자 모두 감소하는 ‘트리플 감소’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정부를 비롯해 세계 경제 기관들은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일제히 낮추는 한편 물가 상승률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