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되는 크기의 금박에 머리카락(0.08㎜)보다 가는 선(0.05㎜)으로 꽃과 새가 그려져있다. 현미경을 통해 봐야만 문양이 확인되는 통일신라 시대 금박 유물이 첫 공개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선각단화쌍조문금박(線刻團華雙鳥文金箔)’을 지난 16일 공개했다. 동궁과 월지 '나'지구 북편 발굴 과정에서 나온 이 유물은 20m 가량 떨어진 곳에서 출토된 두 점이 보존처리를 거쳐 하나로 합쳐진 것인데 가로 3.6㎝, 세로 1.17㎝, 두께 0.04㎜ 크기로 100원짜리 동전과 비슷할 정도로 작다.
현미경으로 50배 확대하면 여러 문양 요소를 늘어놓아 꽃을 위에서 본 형태처럼 그린 단화와 새 두 마리가 보인다. 꽃을 중심으로 좌우에 그려진 새는 멧비둘기로 추정되며, 암수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단화는 경주 구황동 원지 출토 금동경통장식, 황룡사 서편 폐사지 출토 금동제 봉황 장식 등에서 확인되는 통일신라 장식 문양이다. 이 때문에 이 금박 화조도는 8세기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금박의 문양은 매우 가는 철필 같은 도구로 새겨져 맨눈으로는 판별이 힘들 정도로 정교하다. 여러 전문가들은 “8세기 통일신라 시대 금속공예의 정수다. 한국에서 확인된 유물 중에서는 가장 정교한 세공술을 보여준다”고 경탄했다.
어창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관은 "매우 가느다란 철필 등으로 조금(彫金)한 금박은 국내 유물 중 가장 정교한 세공술과 함께 뛰어난 미술적 감각을 보여 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형문화재 금속공예 장인과 함께 재현 실험을 진행해 보니 선을 긋는 건 가능했지만 그림까지 그리는 건 무리였다"며 "첨단 장비도 없던 당시에 어떻게 했는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유물이 출토된 건 2016년이지만 금박 유물의 불가사의한 비밀을 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금박을 핀셋으로 살살 펴는 데만 반년이 걸렸고 관련 자료 조사와 연구, 외부 자문 등이 이어졌다. 그러나 결국 정확한 용도와 구체적인 제작 방식은 알아내지 못했다. 김경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사다리꼴 단면을 가진 기물의 마구리(끝, 단면)로 추정된다. 따로 매달 수 있는 구멍이 없는 걸로 봐서 직접 부착한 장식물일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신에게 봉헌하기 위해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통일신라 시대 왕실에서 불교 유물을 제외하면 화려한 생활용품은 많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8세기 신라 왕실의 생활상을 보여 주는 중요한 유물"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0.04㎜ 두께의 금박을 전자현미경으로 성분 분석한 결과, 순도는 99.99%로 나타났다. 통일신라 시대에 이미 불순물이 0에 가까운 고순도의 정련 기술을 확보했음을 알 수 있다.
문화재청은 17일부터 오는 10월 31일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천존고에서 '3㎝에 담긴 금빛 화조도' 특별전을 열고 일반 관람객에게도 유물을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