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서아에게 '붉은 단심'은 도전이었다. 사극이라는 장르, 억척스러운 캐릭터, 까만 분장 모두 그가 새로 찍은 발자취다. 모든 것이 처음임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촬영했다는 윤서아는 도전의 종착지에 이제 막 발을 내디뎠다.
KBS2 월화드라마 '붉은 단심'(극본 박필주/연출 유영은)은 살아남기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내쳐야 하는 왕 이태(이준)와 살아남기 위해 중전이 되어야 하는 유정(강한나)가 정적이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역병에 걸려 버려진 똥금(윤서아)을 구해준 사람이 유정이다. 똥금은 태어나서 자신을 걱정하며 간호해 주고 먹여주는 손길을 처음 만난다. 그렇기에 유정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윤서아는 이런 똥금이의 강렬함에 매료됐다.
"대본 자체가 정말 재밌었고 흡입력이 강했어요. '굉장히 재밌는 사극 드라마가 탄생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활자 속에서 본 똥금이는 통통 튀면서 강한 힘을 갖고 있더라고요. 감독님께 '제가 전생에 똥금이었나 봐요'라고 말할 정도로 공감도 됐어요. 마음에 울컥하면서 올라오는 것들이 있었는데, 동화되는 것 같았죠."
윤서아가 공감한 똥금은 유정을 만나기 전과 후가 마치 흑과 백처럼 나뉘는 인물이다. 그만큼 유정을 만나게 된 게 똥금의 인생에서는 큰 전환점인 셈이다. 이미 한 번 버려진 목숨, 유정이 구해주면서 새 삶을 부여받은 것이다. 똥금은 유정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입을 열지 않고, 기꺼이 죽음을 맞이한다.
"처음 느껴보는 사람의 손길과 온기는 똥금에게 기적과 같아요. 빛과 같은 선물이죠. 이미 버려진 목숨, 유정을 위해서 오로지 전념한다고 생각해요. 엄청난 의리의 소유자예요. 그런 똥금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간 발랄하고 청순한 역을 주로 맡았던 윤서아에게 악에 받친 똥금은 도전 그 자체였다. 윤서아는 촬영하면서 캐릭터 표현이 더욱 고민됐다고. 그는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똥금이의 마음을 최대한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촬영 전에는 '똥금이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를 연구하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촬영을 하니 달라졌죠. 제가 원래 제 연기에 확신을 갖고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하는 편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처음 해보는 캐릭터기 때문에 많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죠. 다행히 감독님께서 잘 잡아주시고 '똥금이는 잘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셔서 힘이 됐습니다."
비주얼적으로도 도전이었다. 주근깨 가득한 까만 얼굴은 처음 본 윤서아의 얼굴. 처음엔 "이게 난가?" 싶을 정도로 낯설었지만, "더 까맣게 칠해달라. 주근깨가 더 진해야 된다"고 말할 정도로 금방 익숙해졌다.
"제 분장 시간이 제일 많이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얼굴 톤 다운도 해야 되고, 주근깨도 해야 되고, 손 색깔도 맞춰야 됐죠.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가 소요됐는데, 분장 차 안에 있는 모든 장비를 다 써볼 수 있었던 경험이었죠."(웃음)
"꼭 한 번 사극을 해보고 싶었다"는 윤서아는 마음껏 한복을 입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주로 누추한 한복을 입었지만 그럼에도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똥금이 다른 인물들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운 인물이라 장르적 부담감이 덜해 즐기면서 연기할 수 있었다.
"똥금이가 밖에서 자란 아이기 때문에 격식 높은 단어를 많이 쓰지 않았어요. 저는 똥금이의 사투리만 고민하면 됐습니다. 사투리에 중점을 두면서 생각했는데, 원래는 전라도 사투리였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충청도 사투리가 나오더라고요. 그냥 '전라도 사람과 충청도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똥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윤서아의 노력 덕에 똥금이는 작품 속 수많은 명장면을 남겼다. 유정을 지키기 위해 결의를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주인인 조연희(최리)에게 침을 뱉는 장면, 그리고 모진 고문을 받다가 유정 품에서 죽음을 맞는 장면 등이 있다. 특히 윤서아는 똥금의 마지막을 그리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촬영 전날 잠을 전혀 못 자고 갔어요. '똥금이의 마지막을 어떻게 잘 보내줘야 되나'는 생각뿐이었죠. 똥금이는 유정 형님 앞에서 한없이 밝은 아이거든요. '죽게 되는 그 순간까지 형님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가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했었고, '나는 이제 형님을 봤으니 여한이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준비했어요."
"영화 '사도'의 유아인 선배님 연기를 참고했어요. 마지막에 뒤주에서 생을 마감하는 연기를 보면서 많이 공부했죠. 촬영 전에는 사도 OST를 들으면서 감정을 좀 잡으려고 노력하기도 했고요. 확실히 음악이 도움이 됐고, 차분해졌습니다."
어린 나이에 방송일을 접한 윤서아는 어느덧 풍부한 필모그래피를 갖게 됐다.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꼭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을 계속했고 어머니가 연기 학원에 보내주면서 방송일을 접하게 된 그는 학원에서 찍은 프로필 덕분에 광고 쪽으로 먼저 진출했다.
"방송을 처음 접한 건 14살 때였어요. 이후 17살에 EBS '드림 주니어'를 찍었고, 18살에 '미스터리 식당Q'까지 찍었죠. 오래전 일이지만 전 아직까지 생생해요. 마치 어제 찍은 것처럼 기억에 남은 것도 많았고 즐거웠습니다."
교육 방송으로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해서인지, 윤서아는 일명 '인간 EBS'라고 불릴 정도로 바른 생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는 EBS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경험들이 지금의 자신에게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드림 주니어' 때는 진로 탐사대라는 명목으로 저희가 답사를 많이 다녔어요. 탐구하면서 아이들에게 '이런 직업과 진로가 알려줘야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했거든요. 그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