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수가 여자 골프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장면이 1년 6개월 만에 다시 연출됐다. 주인공이 전인지(28·KB금융그룹)라 더 극적이었다.
27일(한국 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베세즈다의 콩그레셔널CC(파72)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 KPMG 여자 PGA챔피언십(총상금 900만 달러)에서 몸통만한 대형 트로피를 들어올린 전인지는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고 믿어주고 응원해준 분들에게 우승으로 보답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2015년 메이저 US 여자오픈 우승과 함께 LPGA 투어에 진출한 전인지는 이듬해 또 다른 메이저 에비앙 챔피언십도 제패했다. 세계 랭킹 3위까지 오르는 등 인기에 걸맞은 기량으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에비앙 이후 2년 넘게 우승이 없다가 2018년 10월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3승째를 올렸고 이번 4승까지는 3년 8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2019년 상금 랭킹 67위까지 내려가며 조금씩 잊혀가던 전인지는 지난해 자주 톱 10에 들며 기회를 엿봤다. 올해 3월 준우승 성적을 내더니 전년도의 두 배로 상금을 올린 이번 대회에서 마침내 한풀이에 성공했다. 우승 상금은 135만 달러(약 17억 5000만 원)다.
첫날 8언더파 64타를 치고 5타 차 선두로 나선 전인지는 2라운드에 6타 차로 더 달아났고 3라운드에 3타 차로 추격 당했으나 끝내 선두 자리를 지켜냈다. 1~4라운드 내내 1위에 오른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다. 이날 4라운드에서 버디 2개와 보기 5개로 3오버파 75타를 친 그는 최종 합계 5언더파 283타로 4언더파 공동 2위 이민지(호주)와 렉시 톰프슨(미국)을 1타 차로 제쳤다.
코스 점검 뒤 높은 탄도와 많은 스핀을 얻기 위해 클럽 구성을 바꾼 게 적중했다. 이번 대회를 앞둔 전인지는 골프백에서 하이브리드 클럽 2개를 빼는 대신 7번과 9번 우드를 넣었다. 마지막으로 써본 게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아주 오랜만에 7번 우드를 다시 들었고 9번 우드는 아예 처음 쓰는 클럽이었다. 이 두 무기는 특히 첫날 압도적인 스코어를 내는 데 큰 도움을 줬다.
4라운드 전반 9홀을 마쳤을 때 전인지는 선두 톰프슨에게 2타 차로 뒤졌다. 전인지가 2·4·6번 홀 보기로 흔들리는 사이 톰프슨이 버디 2개를 잡아 추월한 것이다. 전인지는 9번 홀(파5)에서도 보기를 보태 전반에만 4타를 잃었다. 11번 홀(파5)에서 첫 버디가 나왔지만 2타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14번 홀(파4)부터 분위기가 묘하게 흘렀다. 톰프슨이 60㎝ 파 퍼트를 놓친 것이다. 그는 다음 홀 먼 거리 버디로 바로 타수를 만회했지만 16번 홀(파5)에서 또 실수를 저질렀다. 그린 주변 어프로치 샷이 너무 강해 그린 반대편으로 넘어갔고 퍼터로 굴린 네 번째 샷마저 부정확해 결국 보기를 적었다. 전인지는 이 홀에서 버디를 했고 둘은 5언더파 동타가 됐다. 17번 홀(파4)에서 톰프슨은 1m 조금 넘는 파 퍼트를 못 넣어 자멸한 데 이어 18번 홀(파4) 3m 버디마저 놓쳤다.
전인지도 마지막에 위기가 있었다. 18번 홀에서 티샷 한 공이 페어웨이의 디보트(잔디의 팬 자국)에 들어간 것이다. 핀까지 133야드를 남기고 친 두 번째 샷은 디보트 영향인지 생각보다 멀리 나가 그린 가장자리에서 멈췄다. 좀 더 셌다면 경사를 타고 물로 내려갈 뻔했다. 전인지는 이 상황에서 ‘퍼트에서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퍼터로 힘차게 굴린 공은 홀 주변에 멈췄고 전인지는 파 퍼트를 넣은 뒤 캐디 딘 허든과 포옹했다. 둘은 2015년 US 여자오픈 우승도 함께했던 사이다.
이로써 2020년 12월 김아림의 US 여자오픈 우승 뒤 이어지던 한국 군단의 메이저 무승은 7개 대회에서 마감했다. 국내 투어 9승 중 3승, 일본 투어 2승을 모두 메이저 대회에서 거둔 전인지는 이번을 포함해 한미일 투어 메이저 우승만 도합 8승인 ‘메이저 사냥꾼’이다. 내친김에 8월 4일 개막하는 AIG 여자오픈에서도 우승하면 LPGA 투어 메이저 5개 가운데 4개 대회 정상을 밟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룬다.
전인지는 “후반 들어 과정 자체를 즐기자는 마음으로 임했더니 우승까지 하게 됐다”며 “메이저 코스에 오면 늘 더 큰 도전 정신을 느낀다. 앞에 놓인 새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효주와 최혜진·김세영이 1언더파 공동 5위에 올랐고 지은희는 이븐파 공동 10위를 했다. 박인비는 3오버파 공동 25위, 박성현은 11오버파 공동 62위로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