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부터 전기요금이 1kWh당 5원 인상된다. 월 350kWh의 전기를 사용 중인 가정은 부가가치세(10%)와 전력산업기반기금(3.7%)을 합쳐 2002원의 요금이 인상될 전망이다.
전기료 인상효과 1.3조.. 年 30조 손실 우려 속 ‘언발에 오줌누기’
이번 전기요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한국전력이 올해 30조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은 큰 변함이 없다. 한전은 가구당(월 350kWh 사용 기준) 전기요금을 월 1만3450원 가량은 올려야 올 3분기 영업손실을 막을 수 있지만, 실제 인상액은 2002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전 내부에서는 지난 2019년 도입된 여름철(7~8월) 누진제 완화 정책의 영향으로, 이번 전기요금 인상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올 7월 부터 두달간은 사용량 300kWh 까지는 98.2원의 요금단가가, ‘300kWh초과~450kWh이하’ 전력에는 192.8원의 요금 단가가 각각 적용되기 때문이다. 반면 9월부터는 사용량 200kWh까지의 요금에만 98.2원의 요금단가가, ‘200kWh 초과 400kWh 이하’ 요금에는 192.8원의 요금이 각각 적용된다. 실제 똑같이 350kWh의 전력을 사용할 경우, 지난해 7월에는 4만3240원의 요금이 징수되는 반면 고작 한달 앞인 지난해 6월에는 무려 5만4000원의 요금이 징수된다. 이 때문에 여름철 누진제 적용에서 배제되는 올 9월부터 체감 전기요금이 급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해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이 이제 시작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우선 올 10월부터 앞서 예고한 ‘기준연료비’ 인상분(1kWh당 4.9원)을 전기요금에 모두 반영할 예정이다. 기준연료비는 석유·석탄·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을 기초로 매년 결정되며, 매해 1월부터 반영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문재인 전 정부는 ‘탈원전 청구서가 날아들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요금인상 시점을 미뤘다. 무엇보다 ‘연료비 연동제’ 관련 산식에 따라 내년 1월 실적연료비가 또다시 갱신될 경우, 전기요금이 1년새 2배가량 뛸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연료비 고공행진.. 한전의 회사채 돌려막기 계속
28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올 상반기에만 15조원이 넘는 회사채를 발행했다. 한전은 올 하반기에도 비슷한 규모의 회사채 발행이 불가피해 보여 일각에서는 내년께에서는 자본잠식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번 연료비 인상액 또한 한전 재무개선에 크게 도움되지 못한다. 정부는 매분기마다 결정되는 실적연료비를 분기기준 상한폭(1kWh당 3원)을 넘어 연간기준 상한폭(1kWh당 5원)까지 끌어올렸다며 생색을 내고 있지만, 손실감축 효과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한전은 올 1분기에만 7조786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연료비 가격이 나날이 치솟고 있어 적자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 한전은 매월 평균 4만5000GWh(1GWh=100만kWh) 규모의 전력을 거래 중이라, 실적연료비가 인상된 가격에 해당 전력을 모두 판매할 경우 매월 2250억원의 요금을 더 받을 수 있다. 실적연료비 인상분이 올 연말까지 그대로 적용된다 하더라도 한전이 6개월간 추가로 벌어들 수 있는 금액은 1조3500억원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여기에 오는 10월부터 기준연료비 인상분인 4.9원의 요금이 추가 반영된다 하더라도, 석달간 추가로 벌어들일 수 있는 금액은 67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사채로 사채를 돌려막는’ 한전의 경영행태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2008년처럼 한전 재무개선을 위한 재정 투입이 불가피 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공기업 방만경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와중에 사용가능 카드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는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자본금과 적립금을 합한 금액의 2배 이하로 제한해 놓은’ 한국전력공사법 16조 개정을 통해 한전의 숨통을 잠시 틔워주는 방안도 검토중이지만, 국회동의가 필요한 절차라는 점에서 언제 개정될 지 모른다. 전기요금 인상을 통한 한전 적자 해소가 가장 유력한 카드인 이유다.
인상된 전기료로.. 한전공대 운영비 지원한다
한전의 이 같은 재무악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글로벌 연료비 인상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전 정부의 탈원전 및 신재생 보급 과속정책이 이 같은 재정악화를 초래한 주된 원인이라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 국민의힘이 이날 개최한 의원총회에서는 현 정부 ‘친(親)원전’ 정책의 골조를 만든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가 ‘탈원전과 한전 재정악화의 연관성에 대한 발표를 하며 이전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 협의회 측은 올 초 탈원전의 빈자리를 값비싼 LNG 발전이 메우며 한전 부채를 10조원 이상 늘렸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물가안정을 이유로 전기요금을 억누른 기획재정부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올해 전기료는 기준연료비 인상분(9.8원)과 기후환경요금 인상분(2원)을 더해 1kWh당 11.8원이 인상돼야 했지만, 지난 연말 기재부는 물가상승 우려를 이유로 요금 인상분을 올 2분기와 4분기에 나눠 반영토록 했다. 당시 “탈원전으로 전기료 인상은 없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위해, 한전의 팔을 억지로 비틀었다는 비판이 거셌다. 정부는 이 같은 전기료 인상분의 늦은 반영으로 한전 손실이 4~5조원 가량 늘었을 것으로 추산 중이다.
이번에 인상된 전기요금은 한전공대 운영비로도 전용될 전망이다. 한전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남 나주시에 한전공대를 설립했으며, 향후 10년간 1조6000억원을 쏟아 부어야 한다.
여기에 정부는 지난해 말 전기료에서 3.7%를 떼어내 조성하는 ‘전략산업기반기금’을 한전공대 비용으로 전용할 수 있도록, 전기사업법 시행령을 일부 개정하기도 했다. 전기료가 오르면 전략산업기반기금 적립금도 늘 수밖에 없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사실상 ‘준조세’로, 이전 정부가 ‘알박기’한 한전공대 운영에 세금을 쏟아 붓는다는 비판이 거센 이유다.
전문가들은 전기요금이 앞으로도 계속 인상될 것으로 전망 중이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같은 요금 인상분은 한전의 적자 규모를 메우기에는 어림도 없어 이 같은 전기료 인상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국제적으로 연료비가 다 올랐는데 우리나라만 전기를 싸게 쓸 수 있는 방안은 없으며, 지난 정부의 잘못된 에너지 정책에 따른 부담을 국민들이 떠안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또한 “전기요금 인상과 관련해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원전 이용률 감소 등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소재를 따져야만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같은 문제가 매번 반복될 수 있는 만큼 하루빨리 전기료 결정 체계를 독립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