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사상 첫 ‘6월 열대야’가 발생하는 등 갑작스런 폭염에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옆나라 일본은 사흘연속 ‘전력수급 주의보’를 발령하는 등 동북아 지역의 전력수급 불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전 정부 에너지 정책의 핵심인 ‘태양광’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19시가 넘으면 전체 전원에서 태양광의 발전 기여도가 0%대로 떨어지는데다, 장마가 시작될 경우 한낮 발전 기여도 또한 1%대로 급락할 것으로 전망되는 탓이다. 국내 태양광 설비는 전체 전력설비(134GW)의 15% 수준인 20GW 규모에 달하지만, 장마철 태양광의 발전 기여도는 설비량의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상황이라 전력수급 우려가 증폭되는 모습이다.
설비 비중 15%에 달하지만.. 비만 오면 사라지는 태양광
29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수도권을 중심으로 비가 내렸던 지난 23일 12~13시 기준, 태양광은 1524MW 규모가 출력돼 전력시장 내 발전 비중이 1.9%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12~13시는 하루 중 태양광 발전 효율이 가장 높을 때로, 18시 이후부터는 출력 비중이 0%로 떨어졌다. 태양광의 빈자리는 값비싼 LNG 발전이 메웠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숨겨진 태양광’ 또한 우천 시 힘을 쓰지 못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계통망에 연결되지 않은 자가발전용 태양광 등의 발전량을 모두 합치더라도 태양광의 출력 비중은 6.3%(23일 12~13시 기준)에 그쳤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묻지마 태양광’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가정용 태양광 등 소규모 전력량을 정확히 파악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전력거래소는 ‘전력정보’ 앱에 ‘시간별 태양광 추계 통계’ 항목을 별도 만들며 문 전 대통령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지만, 관련 수치는 태양광의 발전 간헐성이라는 단점만 부각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3일 중부 지방 외에도 남부지방까지 내렸을 경우, 전체 태양광의 발전 비중은 1~2% 수준에 머물렀을 것으로 분석된다. 보통 여름 장마가 6월말부터 한달가량 이어진다는 점에서 앞으로 한달간은 태양광 발전이 사실상 전력 계통망에서 사라지는 셈이다. 연간기준 전력수요가 가장 높은 8월의 경우 섭씨 25도 이상이 되면 발전 효율이 떨어지는 태양광의 특성 때문에, 봄이나 가을철 대비 태양광 발전량이 줄어들 전망이다.
특히 태양광 발전량이 날씨에 따라 널뛰기하며 전력계통망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 날씨가 비교적 맑았던 이달 22일(12~13시 기준) 태양광 출력비중은 전력시장 내에서는 6.1%, 전력시장 밖 발전량까지 합칠 경우 20.0%까지 치솟는다. 이 때문에 태양광 발전 효율이 가장 높은 5월초에는 태양광이 전체 발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 후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신재생의 발전량 널뛰기를 제어하지 못할 경우 자칫 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 전력은 생산량이 수요보다 모자라도 문제지만, 많아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 제주 지역에서는 올해 태양광 발전량이 지나치게 많아지자 10여 차례 출력을 제어하기도 했다.
한국의 신재생 입지.. 42개국 중 꼴찌
이전 정부는 ‘태양광 전도사’를 자처하며 전국을 태양광 패널로 뒤덮었지만, 한국의 태양광 발전 조건은 세계 최악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와 중국 칭화대 등이 지난해 발표한 ‘세계 태양광과 풍력 안정성의 지리적 제약’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신재생 발전 안정성은 분석 대상 42개국 중 42위를 기록했다. 보고서는 해당 국가의 전기 수요를 태양광·풍력 발전으로 모두 메운다는 가정 하에 전력 안정성을 연구했으며, 우리나라는 72.2%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반면 세계 최대 영토를 자랑하는 러시아는 전력 안정성이 90.9%를 기록했으며 이어 캐나다(89.8%), 호주(89.5%), 이집트(88.2%), 미국(87.7%), 중국(87.5%) 순이었다.
반면 이전 정부에서 ‘고사(枯死) 위기’에 몰렸던 원전은 23일 하룻동안 1만9800MW의 전력을 꾸준히 안정적으로 생산하며 톡톡히 제몫을 하고 있다. 원전의 국내 발전설비는 이달 기준 2만3250MW로 국내 전체 태양광 규모(1만9705MW)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일 평균 발전량은 원전 대비 최대 10여배 이상 차이가 나는 셈이다.
원전은 태양광의 발전 간헐성을 보완해 주는 LNG 대비 가격경쟁력도 압도적으로 높다. 원전의 지난달 1kWh당 발전단가는 39.4원으로 LNG(161.9원)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태양광의 지난달 발전단가는 139.3원 수준이지만 대형 발전사들이 태양광 업체에 지급하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RPS) 관련 비용까지 감안하면 실제 단가는 LNG 이상으로 추산된다.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 측은 신재생 설비를 중심으로 2050년 탄소중립을 추진할 경우, 신재생 발전 간헐성을 제어해 줄 에너지저장장치(ESS) 비용만 600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전력 수요 치솟는데 공급은 제자리.. 11년만의 ‘블랙아웃’ 우려
이 같은 ‘묻지마 신재생’ 보급 정책에 올 여름 역대급 폭염 예고가 맞물리며 일각에서는 올해 ‘블랙아웃(대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가뜩이나 가계부담이 늘어난 상황에서, 전력수급 우려까지 더해져 올 여름 ‘불쾌지수’가 역대급으로 치솟을 수 있는 셈이다.
실제 이달 23일 전력공급예비율은 올 들어 처음으로 한자릿수를 기록하며 전력수급 우려를 부추긴다. 23일 공급예비율은 9.5%를 기록했으며 공급예비력 또한 올 들어 최저치인 7955MW에 불과했다.
전력 수급 우려는 올 여름 상당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이미 준공됐어야 할 신한울 1·2호기를 비롯한 상당수 원전이 아직 가동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전은 24시간 동안 값싼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기저전원’ 역할을 해, 전력수급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여기에 원전을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묻지마 신재생 보급 정책 또한 전력 수급 우려를 부추기고 있다. 공급예비율이 9.5%를 기록한 23일은 중부지방에 집중 호우가 내려 상당수 태양광이 ‘먹통’이 된 날이다. 결국 자가 태양광 발전으로 전력소비분을 충당해왔던 각 사업장이나 가정에서, 태양광 가동이 중단되자 원전이나 액화천연가스(LNG)가 주력이 된 전력계통망으로 몰리며 전력수요가 급격히 치솟았다.
신재생의 발전 비효율성은 전력수요가 가장 높은 ‘피크타임’에 여실히 드러난다. 실제 올 6월 전력설비용량은 13만4092MW로 3년전 용량(12만471GW) 대비 10% 이상 늘었지만, 전력피크 타임 당시 전력공급능력은 올 6월 9만1404MW로 3년전(9만520MW)과 큰 차이가 없다. 태양광과 같은 신재생 설비가 전력피크 타임에는 제 역할을 못해 전력계통망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는 셈이다. 이달말부터 장마가 한달 가량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반면, 무역수지 적자를 메우기 위한 각 산업체의 공장 가동률 증가로 올 여름 공급예비력은 꾸준히 이슈가 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올해 2013년 8월 이후 9년여만에 ‘전력수급 비상단계’가 발동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전력 예비력이 5500MW 미만으로 하락할 경우 전력수급 비상단계 1단계를 발령해 왔지만, 올해는 전력 수급 문제 해결을 위해 발령 기준을 6500MW로 높여 잡기로 했다. 전력 수급 비상 단계가 발동되면 각 가정이나 사무실의 냉난방 설비 가동이 중단되며 최소한의 조명을 제외한 나머지 조명은 모두 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