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로터리]대통령부터 훈련해야

김영식 전 제 1야전군사령관(예비역 대장)

김영식 예비역 육군 대장. 사진 제공=육군김영식 예비역 육군 대장. 사진 제공=육군




#1. 1940년 5월 13일, 미 육군 참모총장 조지 마셜이 전쟁 준비에 관심이 없는 루스벨트 대통령을 설득하고 있다.

#2. 1965년 11월 어느 날,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전쟁과 관련해 휠러 합참의장을 비롯한 각 군 참모총장들에게 입에 담기 힘든 험한 말을 한다.



#3.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도발 대응 과정에서 군 지휘부와 대통령 사이에 이견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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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들은 군 통수권자와 군 수뇌부 사이의 담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마셜의 설득으로 루스벨트는 군사정책을 전환해 승리했으나, 존슨과 합참의 불화는 전쟁을 미궁에 빠지게 했고 대통령은 정치생명마저 잃었다. 연평도 현장의 해병대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훈련한 대로 대응했지만 국군 통수권자와 군 수뇌부는 국민의 요구에 미치지 못한 결정을 함으로써 신뢰를 잃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5월 10일 0시에 윤석열 신임 대통령에게 국군 통수권이 이양됐음을 보고했다. 헌법에 따라 국군 통수권자가 됐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위이다. 취임식도 하지 않은 신임 대통령이 권한을 이양받는 것은 국가 안보에 관한 한 어떤 진공 상태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한을 이양받는 것과 그 권한을 행사할 준비가 돼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수만 명의 목숨을 희생시켜야 하는 비정한 결심을 고독하게 내리는 곳이 국군 통수권자의 책상일지도 모른다. 이해가 중층(重層)으로 얽혀 있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복잡한 국제 관계의 이해(利害)를 살피면서 전통적 안보를 뛰어넘는 포괄적 안보 위협들에 제대로 대비하는 것은 녹록한 일이 아니다. 수많은 요소 중에서 자칫 한 가지 요소라도 잘못 판단하면 국가의 명운이 달라진다. 국군 통수권자가 제대로 결심하기 위해서는 평소 훈련을 해야 한다. 정전 체제에서 사는 우리는 값비싼 경험으로 시스템을 구축했고 1968년부터 매년 정부 차원의 전쟁 연습을 함으로써 국가 총력전 체제를 가동하는 역량을 구비해왔지만 지난 정부에서는 평화 착시 현상에 빠져 3년 동안 연습을 하지 않았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변화의 기운이 느껴진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가 총력전 태세를 진단하고 보완하기 위한 올해 정부 연습은 제대로 시행되리라 믿는다. 그러나 1년에 1회만 하는 연습으로는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 군 생활을 통해 배운 중요한 교훈은 실력이 하루에 늘지 않으며 훈련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많은 예산과 시간을 들여서 전쟁을 모의하는 시뮬레이션 연습은 어렵겠지만 주요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다양한 위기 상황을 상정하고 아무 형식 없이 토론하는 TTX(Table Top Exercise·토의식 연습)는 의지만 있으면 언제라도 가능하다. 그러한 자리에서 대통령 주재하에 민군이 치열한 토론을 주기적으로 한다면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은 더욱 튼튼해지리라 확신한다.

1991년 ‘사막의 폭풍작전’에서 이라크군을 괴멸시킨 미군 장병들이 이구동성으로 했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실제 전투는 국립훈련센터(NTC, National Training Center)에서 했던 훈련보다 덜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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