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당분간 정부 조직 개편을 추진하지 않기로 하면서 ‘통상 기능 이관’을 놓고 벌어졌던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 간 ‘세 대결’은 사실상 산업부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최근 이 싸움에 농민 단체가 끼어들었다. 이들은 통상 기능을 외교부에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정부가 참여를 선언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에 위생검역(SPS) 투명성 강화가 포함되면서 농민들의 불안감이 덩달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4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IPEF 의제 중 무역 분야에는 SPS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세부 내용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수입 농산물 검역 요청에 대한 정부의 응답 의무 등이 강화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신선 과일 상당수 품목에 대해 병해충 유입을 근거로 주요 수출국을 ‘수입 금지 지역’으로 지정해 왔다. 각종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이미 개방된 우리 농산물 시장에서 SPS는 정부가 수입을 억제하는 중요한 카드였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농업계 일각에서는 시장 개방이나 관세 인하만큼이나 SPS 의무 강화를 민감한 이슈로 받아들인다. 현재 신선 상태로 수입되지 않는 사과·복숭아·배 등이 신선 상태로 수입될 수 있어서다.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관계자는 “IPEF를 비롯한 대외 협상에서 다른 나라의 공산품 시장을 조금이라도 빼앗으려면 우리 농축산물 시장을 그만큼 내줘야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일반 산업계의 이익만을 다루는 산업부가 협상을 주도하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업부는 현재 글로벌 통상 트렌드에서 SPS 투명성 강화를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보고 있다. 올 초 출범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나 우리 정부가 가입을 추진 중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도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SPS를 비관세 장벽으로 활용하는 것처럼 우리 정부도 SPS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 ‘신통상질서 농업 분야 대응전략 연구’ 연구 용역을 맡기고 SPS 전문성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올 들어 SPS 관련 인력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1명,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4명이 증원됐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기존 인력의 전문성 강화와 인프라 확충 또한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