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에 그렇게 덥다가 저녁 퇴근길에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흠뻑 젖었습니다. 열대야로 밤새 뒤척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7일 오전 출근 시간대에 만난 직장인 박 모(38) 씨는 더운 날씨 때문에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몇 년 전부터 친구들과 ‘우리나라도 이제 아열대기후’라고 농담했는데 어제는 진짜 동남아에 있는 줄 알았다”면서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폭염으로 서울에서 사상 첫 ‘6월 열대야’가 발생한 것에 더해 동남아에서 주로 관측되는 ‘스콜(열대지방에서 나타나는 강한 소나기)’에 비견할 만한 국지성 폭우가 곳곳에서 쏟아지는 등 올여름 들어 이상기후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낮 최고기온과 밤 최저기온은 하루가 멀다 하고 동기 대비 최고 수치를 경신하는 양상이어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피해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를 키운다.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전국 곳곳에서 최저·최고기온 극값(동기 대비 더 크거나 작은 값이 없는 수치)을 경신하고 있다. 3일 경북 상주·청송과 경남 의령 등에는 낮 최고기온이 36도까지 올라 역대 기록을 갈아 치웠다. 해발 949m에 위치해 ‘시원한 여름 도시’로 불리던 태백도 2일 유례없이 33도까지 기온이 치솟았다. 서울은 7월 상순인 현재 29.5도(6일), 29.2도(5일)를 기록했다. 평년에 비해 4~5도가량 높은 수준이다.
실제 올해 평균기온은 4월 13.8도, 5월 18도, 6월 22.4도 등 지난해에 비해 약 0.5~1도가량 높은 수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서울에 1978년 이후 처음으로 ‘6월 열대야’가 펼쳐지는 등 최저기온 최곳값이 상승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올해 6월 최저기온 최곳값을 경신한 지자체는 54곳에 이른다. 열대야는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지구온난화로 전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면 대기 중의 수증기량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더 많은 비가 더 짧은 시간에 내릴 수 있다”며 “긴 시간을 두고 한 번씩 관측돼야 할 기온의 극값이 일상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도 과거와는 다른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관련 데이터가 연구·분석된 바는 없기 때문에 최근 날씨들이 기후 위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밤낮 없이 고온이 지속되는데다 이른바 ‘기습 폭우’도 반복적으로 발생하자 시민들은 기후 위기가 눈앞으로 다가왔다는 반응이다. 서울 중랑구에 거주하는 김 모(30) 씨는 “요즘 날씨가 너무 습하고 덥다 보니 기후변화를 체감한다”면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 위기가 먼 나라 일처럼 여겨졌는데 우리나라도 더 이상 방관하고 안심할 때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례적인 폭염이 이어지자 인적·물적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기준으로 온열질환자 51명이 추가로 발생했다. 올 들어 누적 환자 수는 548명으로 전년 동기의 155명보다 약 3.5배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누적 사망자는 5명이다. 폭염으로 닭·오리·돼지 9만 7000여 마리가 폐사하면서 농가 피해도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