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이슈 리포트] 방산 시장 빗장 푸는 EU…수출전쟁 지휘할 '워룸' 만들어야

■안영수 한국항공전략연구원 원장

-글로벌 톱3 방산 대국 진입하려면





지난주 3박 5일 일정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했다. 짧은 시간에 한미일·아시아태평양 파트너 4국을 포함한 총 11개국과의 정상회담을 숨 가쁘게 소화했다. 특히 폴란드와의 원전·방산 등 국가전략산업군에 대한 협상 진전은 단연 돋보이는 성과다. 폴란드를 기반으로 동유럽 및 나토 국가들의 대규모 수주가 이어질 경우 국내 방위산업은 양적·질적 측면에서 획기적인 도약의 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5년간 방산 비리만 쫓다 수출 놓쳐

생산·고용 규모도 두자릿수 급감

폴란드, 러 위협 대비 무기 수요↑

향후 5년간 200억弗 수주 가능성

개발 때부터 해외시장 고려 중요

기업 대형화로 규모의 경제 키우고

美·중후진국 등 국가별전략 마련을



지난 5년간 생산·수출·고용 암흑기

지난 5년(2017~2021)은 방위산업 최대의 암흑기로 평가된다. 계속 성장하던 방위산업의 주요 지표는 2016년 발생한 세월호 사태가 방산 비리로 확산되면서 생산액·수출액·영업이익이 하락하는 3중고와 더불어 고용도 크게 감소했다. 2016년 16조 4000억 원, 3조 원, 3만 7000명에 달했던 생산·수출·고용 규모는 2017년에 각각 12.8%, 36.7%, 12%씩 감소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 업체들이 부정당 제재를 당했으며 업체 임원, 관련 공무원과 고위 장성들이 고발·구속됐다. 방산 기업들의 생산을 견인하는 핵심 축인 방위력개선비는 5년 동안 41.4%나 늘었으나 주요 생산지표는 과거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정부의 방산 비리 척결은 결과적으로 해외 수주 활동도 크게 위축시켰다. 2015년 약 4조 원에 달했던 수출 수주액은 2016년 2조 9000억 원으로 27.5% 감소한 뒤 2020년까지 3조 2000억~3조 6000억 원에 그쳤다. 이 결과는 2016년 18.3%에 이르렀던 수출 비중이 2021년에는 10.1%로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2018년 약 160억 달러 규모(1차, 350여 대)에 달하는 미국의 초음속훈련기(APT) 수주 실패는 가장 뼈아픈 사례로 지적된다. 지난해 말의 대규모 수주로 수출 수주액은 전년 대비 약 62% 증가한 5조 5000억 원으로 추정돼 수년 만에 청신호가 켜졌다.


관련기사







국내 생산액 고작 16조…'규모의 경제' 미흡

국내 방위산업의 가장 큰 과제는 생산 규모가 16조 원으로 규모의 경제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350여 개 기업이 참여한 총생산 규모가 글로벌 10위권 기업의 연간 매출액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국내 생산의 약 65~70%를 차지하는 10대 기업의 매출 규모는 글로벌 14~15위권 기업 수준이다. 이 같은 원인은 기술과 시장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기 체계별 과도한 전문화 정책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한 체계종합(완제품) 중심의 개발 및 생산 방식 지속으로 핵심 기술·부품·소재의 수입유발적 구조가 고착돼 우수 중소기업 육성이 힘든 악순환에 빠져 있다. 이 결과 연간 수조 원 규모의 생산·운영유지용 부품·소재가 수입되고 있으며 이는 국방력과 완제품 수출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주요인 중 하나다.

특히 국방에 정부 재정을 많이 투입하면서도 일자리 창출 효과가 매우 낮은 것은 심각한 문제다. 선진국들은 최첨단 방산 분야에 대한 효과적인 정부 재정 투입으로 국가전략산업 육성과 수출 산업화를 통해 국내총생산(GDP)에 걸맞은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미국의 2019년 정부 재정 대비 국방비 비중은 9.6%이나 제조업 내 방산 고용 비중(항공우주 포함)은 17.2%다. 유도무기·무인기 분야의 글로벌 강자인 이스라엘은 2018년 국방비 비중이 13.5%이며 고용 비중은 16.9%이다. 우리 주력 산업인 자동차의 고용 비중보다 높다. 우리 국방비 비중은 10%이나 제조업 고용 비중은 1.7%(항공우주 포함)인 5만 명에 불과하다. 세계 8위권의 거대 국가임에도 고용률은 이들 국가의 10% 수준이다.

폴란드, 1~2년내 방산수요 100억弗 달해

지난달 30일 최상목 경제수석은 “한국과 폴란드 양국 정상 간 방산 협력에 대한 심도 높은 논의로 조만간 실질적 진전이 예상된다”는 발언과 함께 ‘세계 3~4위권 방산 대국 진입 목표’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비교적 높은 소득 수준(약 1만 6000달러)으로 동유럽의 대표 국가로 불리는 폴란드는 나토 가입국으로서 병력 수 총 11만 명, 올해 기준 국방비 146억 7000만 달러, 무기 획득 예산은 38억 달러로 우리나라 대비 약 20~30% 수준이다. 주력 무기의 상당수는 1960~1980년대에 도입된 옛 소련제이며 노후화 및 성능, 운영 유지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는 점증하는 대(對)러시아 위협으로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긴급 대응을 위한 노후 무기 대체 및 첨단 무기 긴급 소요가 급증하고 있다. 5월 말 긴급 내한한 폴란드 국방장관과 무기 구매 담당 부서인 군비검증단은 우리 주력 제품인 FA 50, K2 전차, K9 자주포, 장갑차, 레이더, 유도 무기 등 다양한 무기 체계를 확인했다. 향후 1~2년 내의 대폴란드 방산 수출 규모는 약 100억 달러, 향후 5년간 총수출 수주 규모는 약 200억 달러로 예상된다. 따라서 우리 정부 및 기업의 적기 무기 공급 능력과 폴란드의 재정 부족을 커버할 수출 파이낸싱 역량, 가격 경쟁력 등이 폴란드 수출 성공의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방산정책 패러다임 전환 시급

올해 초 우리 방산 기업들은 이집트·아랍에미리트연합(UAE)으로부터 약 50억 달러 규모를 수주했다. 폴란드에도 수출할 경우 연말까지 최소 100억~150억 달러의 수주가 예상된다. 그러나 우리 제품·가격·기업 및 정부의 전반적 경쟁력 열위로 이 같은 수출 규모의 지속·안정성이 담보될지는 불투명하다. 글로벌 5위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연간 100억 달러 이상의 안정적 수출 달성의 필요조건은 무엇일까.

먼저 방위 산업 수출과 경쟁력 향상을 위해 기업의 대형화와 더불어 내수 전용 개발 획득 정책의 개선이 필요하다. 국제 공동 개발 사업 등 해외 시장을 고려하지 않은 개발 정책은 규모의 경제 미흡으로 가격과 품질 경쟁력 제고에 한계가 있다. 둘째, 개발·생산 제품에 대한 전액원가보상제도(원가+α), 체계종합 업체와 전문 업체 간의 과도한 분업화를 개선해 가격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셋째, 소부장 국산화율을 제고해 중소기업 육성과 해외 시장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넷째,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 신산업 분야에서 초기 시장 창출 노력과 민군 기술·제품 간 시너지 창출 극대화 등 종합적 차원의 산업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한미 안보동맹 자산 적극 활용해야

또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진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미국의 올해 방산 예산(운영 유지 포함)은 5717억 6000만 달러(약 723조 8000억 원)로 우리 정부의 총예산 604조 4000억 원을 훌쩍 넘는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주요 동맹국 중심 글로벌 안보 유지 및 강화 정책과 연계한 대미 방산 수출 전략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도 강력한 한미 동맹 기반의 한반도 평화를 강조해왔다. ‘동맹 자산’ 가치를 기반으로 연간 40억~50억 달러의 구조적 대미 방산 무역적자를 개선해야 한다. FA 50, 장갑차, 유도 무기 등 대미 완제품 수출 및 항공정비(MRO) 시장 진입을 통한 질적 불균형 해소 노력도 필요하다. 신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동)유럽 및 나토 국가, 세계 국방비 지출 3~4위의 인도·사우디아라비아 등 대규모 시장 중심의 중장기적 ‘국가별 수출 전략’ 수립이 시급하다.

방산 수출이 성공하려면 무기의 가격·성능·조건도 중요하지만 산업 성숙도가 낮거나 외화가 부족한 중후진국들의 경우 자국의 산업 발전과 연계된 산업 협력, 파이낸싱이 포함된 패키지형 수출이 매우 유효하다. 프랑스의 대인도 전투기 수출 사례가 대표적이다. 세계 3위 국방비 지출국인 인도는 최근 미국·유럽·이스라엘 방산 수출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정부는 자국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는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과 더불어 경제발전을 지속하기 위해 에너지·교통 등 국가 인프라 사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 사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모디 정부의 국가 정책에 적극 부응하기 위해 36대, 8억 유로(약 10조 원) 규모의 ‘라팔전투기’ 계약을 체결할 때 원전 건설을 포함한 에너지 협력과 경전철·교통망 사업에 대한 원조를 동시에 진행하는 범국가적 ‘빅딜’로 미국·영국을 물리쳤다. 특히 이러한 대규모 사업에 대해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VIP 세일즈와 더불어 정부간거래(GtoG) 방식이 주효한 것으로 평가된다. GtoG거래는 투명성·공정성 때문에 중후진국 정부가 선호하는 방식이며 우리 입장에서는 다국 간 경쟁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수주가 용이하다는 강점이 있다. 프랑스는 국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초대형 수출 프로젝트 계약을 성공시키기 위해 ‘범정부계약지원위원회(총리 비서실장 주재)’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방부·외교부·경제재정부·대통령실·총리실이 참여하고 있다.

수출 비중 40~50% 수준의 글로벌 5위권 방산 대국으로 발전해 선진형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산업 정책 관점에서 개혁 수준의 개발·획득·수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대통령실에 범부처 정책 조정 목적의 ‘컨트롤타워’ 설치가 긴요하다. 방산 수출은 해외 정부가 수요자이면서 무기라는 제품의 특성 때문에 정부 주도형 수출에 의한 GtoG 성격이 강하다. 폴란드 같은 중후진국의 경우 민간·공공 부문의 각종 산업 협력과 유무상 지원, 적극적인 파이낸싱, 문화 교류 등 다양한 측면에서 모든 부처가 역량을 결집해야만 수주에 성공할 수 있다.


■안영수 원장은…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KIET)에서 30년 이상 우주·항공산업, 방위 산업, 민군기술협력 산업 등 국가전략산업 정책을 연구했다. 대규모 정부 재정이 투입돼 거대·선진강국들이 독점하고 있는 방위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수출 산업화, 구조 고도화를 통한 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개발에 평생을 바쳤다. 수십 년간 청와대·산업부·국방부·방위사업청·과학기술부·국회 등 대정부 정책 자문과 각종 정부 위원회, 태스크포스(TF), 자문 활동을 통해 정책적인 기여를 해왔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