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한반도24시]외교 무대에 회색지대는 없다

이춘근 국제정치 아카데미 대표

중립국 스웨덴·핀란드도 나토 가입

글로벌 정세 美 vs 中·러 선택 강요

더이상 줄타기식 외교 설 자리 잃어

韓, 미·중 사이서 명확한 입장 필요

이춘근 국제정치 아카데미 대표이춘근 국제정치 아카데미 대표




세상이 변할 때면 오랫동안 써먹혀왔던 국제정치적 개념이 없어지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한다. 2022년 6월 말 야기된 국제정치 변화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것 중 하나는 전통적 중립국이었던 스웨덴과 핀란드가 서방 측의 군사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해 이제 국제정치에 더 이상의 회색지대는 없어지게 됐다는 점이다. 세상의 거의 모든 나라는 지금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주의 서방의 편을 들 것이냐, 혹은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독재국가의 편을 들 것이냐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미국은 스웨덴과 핀란드 등 두 대표적인 중립국을 나토에 편입시킴은 물론 아시아의 민주주의국가들이자 미국과의 강력한 동맹을 과시하는 네 나라 즉 일본·호주·뉴질랜드와 한국 등 아시아태평양 국가 정상들을 나토 회의에 초청함으로써 나토의 잠재적 적국 가운데 중국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 나토 사무총장 역시 공개적으로 중국은 나토가 상정하는 적국이라고 말했다. 세계 정치는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중국과 러시아 등 독재국가 간의 대결로 단순화되고 있다



강대국 소련, 그리고 1990년 이후 러시아와 1280㎞의 국경을 맞대고 있던 핀란드는 오랫동안 소련과 러시아가 분노하기 이전에 알아서 소련 혹은 러시아의 비위를 맞추는 외교정책을 가지고 있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약소국들이 이웃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외교정책을 핀란드화(Finlandization·핀란디제이션)라는 용어로 표현해왔다. ‘핀란디제이션’이라는 오래된 국제정치학적 개념을 필자는 ‘알아서 긴다’라는 약간은 투박한 말로 번역해서 사용하고는 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중국 정책은 핀란디제이션의 대표적인 사례였고 박근혜 정부의 대중국 정책 역시 핀란디제이션의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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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얼마 전 핀란드가 서방 진영의 군사 동맹인 나토에 공식 가입하게 됨과 동시에 ‘핀란디제이션’이라는 국제정치학 개념은 소멸되고 말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주의국가인 핀란드가 그토록 오랫동안 소련 또는 러시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도록 했던 상황은 이제 소멸되게 됐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서 보듯이 이웃의 약소국을 무력 침공할 수 있는 나라라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는 점이다. 둘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같은 약소국 하나도 쉽게 점령할 수 있을 만큼 강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셋째, 핀란드가 보기에 나토는 핀란드의 안전을 보장할 만큼 충분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러시아가 막강하던 시절 핀란드는 서방 측이 핀란드를 위해 진정 러시아와 일전을 각오할 수 있을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핀란드의 나토 가입은 우리나라도 참고해야 할 좋은 전략적 교훈을 제시한다. 첫째, 오늘의 세계에서 더 이상의 회색지대는 없게 됐다는 점이다. 회색지대가 없어졌기 때문에 줄타기 외교 혹은 핀란디제이션식 외교도 설 자리기 없게 됐다. 둘째, 온 세계가 민주국가 대 독재국가로 나뉘어 경쟁하는 분명한 구도가 형성되게 됐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벌여왔다. 문재인 정부의 대중 정책은 물론 박근혜 정부의 대중 정책에서 핀란디제이션식 외교의 모습이 분명했었다. 자유민주주의를 건국의 기초로 삼는 대한민국이 세계 정치의 구도가 민주주의 대 독재의 대결로 압축된 지금 어떤 외교를 펴야 할지가 너무 분명하게 됐다.

핀란드가 오랜 전통의 외교정책을 집어던진 가장 큰 이유는 힘의 균형에서 핀란드가 선호하는 민주주의 진영이 당연히 러시아를 압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이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나토의 힘마저 총동원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의 힘이 미국과 맞먹을지 모르기 때문에 양측을 다 고려해야 한다는 말 역시 웃기는 말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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