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김태기의 인사이트]'3중 딜레마'에 빠진 국제 질서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전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





변화무쌍할수록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당면한 글로벌 경제위기가 그렇다. 물가가 급등하고 경기가 침체되는 가운데 안정의 기미가 보이는 듯 하다가 다시 악화되는 등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는 중국과 러시아가 자원을 무기화하고 자유무역의 규범을 깨뜨린데서 비롯한다. 세계화를 주도한 미국이 맞서고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럽이 합류함으로써 체제간의 대결이 되었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본질은 정치적으로 민주와 독재, 경제적으로 중상주의와 자유무역의 충돌로 볼 수 있다. 충돌에 따른 양대 세력의 이해득실은 정치 제도와 경제 제도의 정합성에 따라 달라진다.



중국은 중상주의적 세계화를 추구하고 있다. 안으로 반도체 등 제조·기술 굴기를, 바깥으로 일대일로를 내세우며 확장을 꾀한다. 러시아는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이용해 유럽을 흔들고, 군사력으로 영토 확장에 나선다. 미국과 유럽은 위기감을 느끼고 중국의 굴기와 러시아의 확장을 막는데 힘을 합치고 있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 등도 끌어 들인다. 경제 제제로 중국과 러시아의 굴기와 확장을 막고자 하고 반면,중국과 러시아는 보복으로 제재를 버텨내려 한다. 하지만 양대 세력에게 모두 약점이 있다. 미국·유럽은 정파의 이익 때문에 국익이 훼손되고, 중국·러시아는 독재자의 이익이 국민의 이익보다 앞서는 문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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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론으로 보면 미국·유럽과 중국·러시아의 충돌은 양쪽 모두 이기는 정합게임이 되기 어렵다. 어느 한쪽은 이기고 다른 쪽은 지는 치킨게임이 될 가능성이 크고, 최선의 선택이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손해를 보는 죄수의 딜레마게임이 될 수도 있다. 치킨게임을 벌이면 제재와 보복이 반복되면서 각자 경제력이 소모되고,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벌이면 양쪽의 경제는 단절되어 간다. 지금처럼 치킨 게임을 벌이면 글로벌 경제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유럽은 물론 미국도 경기침체와 대량실업에 처한다. 하지만 더 악화되어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벌이면 글로벌 경제는 저성장·고물가의 늪에 빠지고, 중국·러시아는 체제붕괴의 위험에 처한다.

냉전 이후 전개된 세계화에 대해 3중 딜레마 이론이 있다. 민주주의, 주권, 세계화 3개를 모두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잘해봐야 2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화를 주도한 미국·유럽이 민주주의가 취약해지고 또 중국·러시아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경제위기에 직면한 지금의 상황을 예견한 것이다. 세계화의 역설은 초기에 제기되었지만 간과되다가 美中갈등이 불거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3중 딜레마 이론을 제기한 콜롬비아대학의 재그디시 바그와티 경제학 교수나 하바드대학 대니 로드릭 경제학 교수 등이 제시한 해결 전략은 과도한 세계화를 지양하고, 이에 맞도록 거버넌스와 규범을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의 對外개방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전략의 수정이 필요하다. 밖으로 개방의 수위를 조정하고 안으로 경제안보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미국·유럽과 중국·러시아의 충돌에서 비롯되기에 오래 지속된다. 미국과 중국이 자국 산업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강화하는 만큼 한국은 적극 대응해야 한다. 반도체 등 미국과 중국이 모두 한국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산업은 키우고, 원자재 등 한국이 취약한 산업을 보완하며, 이를 뒷받침하도록 인력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냉전 시대인 1980년대에 석유위기를 산업 전환의 기회로 만들었을 때도 그랬다. 글로블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험난하지만 한국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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