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청소년을 부족하고 미성숙한 존재로만 보고 무조건 가르치려고 듭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들도 자기가 책임을 갖고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들도 어엿한 시민이죠. 그들이 올바로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우리 사회도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24년 간 청소년 활동을 해온 정건희(50) 청소년자치연구소장은 13일 전북 군산 월명로 사무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청소년은 입시 기계가 아니다”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청소년자치연구소는 2015년 청소년 지원 단체인 사단법인 들꽃청소년세상과 결합해 출범했다. 현재 달그락청소년마을방송국(DYBS), ASPECT 청년 기자단 등 13개 분야에서 140여 명이 참여해 활동하고 있다.
정 소장은 우리나라의 청소년이 ‘입시 기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10대는 언제나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어른들의 지도를 받아야 할 대상이다. 그는 이러한 편견을 깨고 싶다고 했다. “핵심은 청소년들이 시민으로서 자기 삶과 주변 환경을 바꾸고자 활동을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들이 꿈꾸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합니다. 연구소에서 청소년을 지원하는 분들이 그들의 행동을 문제시하지 않고 교육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프로그램도 기존 시설에서 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여기에서는 강사가 나와 강연을 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모든 것은 청소년들이 직접 몸으로 체험한다. 달그락 기자단이 대표적인 예. 기자들은 지역신문과 협약을 맺고 직접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해 신문 1개 면을 책임진다. 기자가 되기 위해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정 소장은 “배우는 단계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활동에 뛰어들게 되면 그만큼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이 과정을 통해 어른과 똑같은 시민이라는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활동을 할 때는 반드시 전제 조건이 붙는다. 자신이 하는 일이 과연 지역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사회와의 공생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정책 제안도 한다. 지난 지방선거 기간에는 청소년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도지사·시장·시도의원 등을 모아놓고 정책 포럼을 열기도 했다. 그는 “당시에는 지역 정책을 한번 다 바꿔보자는 생각에 현장 조사도 하고 관련 법령도 연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며 “그 결과 청소년들의 정책 제안 중 70% 이상은 받아들여졌다”고 설명했다.
청소년 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청소년들은 입시 외에 하는 게 별로 없다. 그냥 학교에서 커리큘럼을 주면 잘 따르고 외우면 그만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부모와 사회가 결정한다. 청소년 스스로 어떤 것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이 굉장히 낯설 수밖에 없다. 정 소장이 청소년 자치 기구의 규약 제정을 청소년의 손에 맡긴 이유다. 정 소장은 “자치의 핵심은 자기 선택이고 그에 따르는 책임도 자기 몫”이라며 “이 과정을 통해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고 결국 이것이 지역사회를 바꾸는 힘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청소년의 자발적 참여는 경제와 사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스스로 선택을 해본 친구들이 좋은 기업,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을 만들 수 있어요. 이렇게 되면 사회가 역동적으로 굴러가겠죠.” 사회적 가치를 경험한 청소년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곧 함께하는 사회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호랑이만 사는 세상은 있을 수 없어요. 토끼나 조그만 세상도 함께 살 수 있는 ‘약자 인지적’ 세상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