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 전쟁·전염병에 헤어질 결심…그렇게 우리는 살아간다

■대이동의 시작-파라그 카나 지음, 비즈니스맵 펴냄

온난화·인구불균형·정치 불안 등 영향

안정된 국가·사회로 '인구 대이동' 불러

후진국 청년은 일자리 찾아 선진국으로

서구는 고령화에 '이민 확대' 정책 나서

"앞으로 수십년간 수십억명 고향 떠날 듯"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2020년 중반 의료인·기술 인력·유학생 등에 신속하게 비자를 발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반(反)이민 정서를 앞세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로 정권을 잡았지만 정작 이민을 옥죄자 고급 인력 부족이 사회문제로 대두됐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 내 부족한 의사와 간호사 수는 10만명을 넘었고 대기 환자가 450만명에 이르렀다. ‘이주 노동자가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며 국경 문턱을 높인 나라라도 국가간 인력 이동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신간 ‘대이동의 시대’는 지금은 코로나19 탓에 잠시 주춤하더라도 지역간·국가간 인류의 대이동이 시작됐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책은 “인류의 문명이라는 여정은 조건이 아닌 이동이며 정박이 아닌 항해”라는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말을 빌어 ‘이동’이 인류가 이룩한 문화의 핵심 요소라고 말한다. 전쟁, 전염병, 기근, 대학살 등 다양한 재앙을 피하고 기후변화에 적응하며 이동한 덕분에 인류가 생물학적·문화적·사회적 진보를 이룩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국제 관계 전문가이자 미래학자로 데이터 기반 자문 회사인 퓨처맵의 창립자인 파라그 카나다. 세계경제포럼(WEF) ‘차세대 글로벌 리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미래 지도자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유목과 농업 사회였던 문명 1.0, 산업화 시기의 문명 2.0에 이어 지구상의 인구 지도를 다시 그린 문명 3.0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앞으로 수십년 동안 수십억 인구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해안에서 내륙으로,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물가가 비싼 곳에서 저렴한 곳으로, 파탄 사회에서 안정 사회로 이동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인류의 대이동을 촉발하는 요소는 기후변화, 국가간 인구 구조의 불균형, 정치 불안, 경제와 기술 등이다.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지금보다 1도 상승하면 2억명, 2도 오르면 10억명의 기후 난민이 발생한다. 이미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는 농지가 사막화하고 경제가 파탄 상태에 이른 가운데 정치적 혼란까지 더해지면서 인구 탈출 압박이 높아지고 있다.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에도 해수면이 오르고 하천은 말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비옥하고 기후가 좋아 인간이 지난 6000년간 몰려 살던 북위 25~45도 지역마저 기후 재앙에 노출돼 있다. 뉴욕과 마이애미는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험에 직면해 있고 로스앤젤레스는 수자원 고갈, 샌프란시스코는 주기적인 화재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캐나다 북부와 그린란드, 러시아의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스텝 지역은 수십 개의 새로운 도시가 건설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카나의 주장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도 앞으로 수십년 동안 시베리아의 최대 85% 지역이 거주 가능하고 비옥한 땅으로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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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선진국은 고령화하고 후진국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층이 넘쳐나면서 이동 압박은 커지고 있다. 현재 유럽·일본·한국 등은 연금과 노인 요양 지출은 급증하는 반면 노동력은 줄어들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들 국가에는 기술 인력뿐만 아니라 가사 도우미, 청소부, 건설 현장 인력 등 저숙련 노동자들도 필수다. 해결책은 이민 확대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오늘날 시민이 감소하는 국가는 앞으로 고사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청년이 증가하고 있는 국가는 앞으로 번영을 누릴 것이다.”

이미 캐나다는 현재 3000만명인 인구를 1억 명까지 늘리겠다는 목표 아래 인도 등에서 매년 35만 명 가량의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국인 혐오 정책을 틈타 다른 영어권 국가나 유럽은 거주 비자 제공 등 미래 주역인 학생들을 차지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심지어 미국 학생들도 높은 학비를 피해 유럽 대학을 졸업한 뒤 현지 정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유럽으로 이주한 미국인 숫자는 해마다 증가해 현재 100만명에 이른다.

특히 아시아의 경우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해외 이민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에다 도시화, 공업화로 삶의 질은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권 중산층은 정보기술(IT), 건설, 의료 분야에서 전문 기술을 갖고 있어 유럽 등에서 수요가 크기 때문이다. 책은 “미국인과 유럽인을 합한 숫자보다 더 많은 밀레니얼 세대가 중국과 인도에 각각 거주하고 있다”며 “서양에서 인구 불균형이 심화될수록 아시아인에 대한 전세계적인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 발전도 ‘이동’을 촉진하는 요소다. 생산직은 물론 전문가조차 인공지능(AI)과 로봇에 밀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미국에서만 자율 주행차로 최대 300만명의 트럭 기사가 실직하고 200만명의 부동산 중개인이 부동산 거래 앱 때문에 일자를 잃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또 과거처럼 내전과 정치 불안, 종교적·인종적 박해, 독재를 피해 고향을 떠나는 난민 증가 추세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책은 현재 80억명 정도인 세계 인구가 2045년 절정에 도달한 뒤 90억명 이하에서 정체될 것으로 전망한다. 인구의 64%를 차지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아이를 낳는데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앞으로 20년 동안 인류가 직면하게 될 최대 위협이 전 세계적인 인구 붕괴라며 각국이 대이동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선진국의 인구 감소는 사회 경제적 갈등을 일으키는 반면 빈곤한 국가의 인구 급증은 공평한 발전을 지연시킨다”며 “이주가 증가하면 이러한 간극이 메워지면서 세계가 집단으로 가난해지거나 불평등해지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북반구 선진국에 대해서는 인간의 주거지가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며 농업과 인프라 투자를 단행해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1만9000원.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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