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미국의 구호법안이 발효되면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재정 지출이 예상됨에 따라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향후 인플레이션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서머스(Summers)와 블량샤(Blanchard)는 수요압력이나 기대 등을 통해 인플레이션 상승 리스크가 크다고 주장하는 반면 크루그먼(Krugman)은 필립스 곡선의 평탄화 등을 근거로 인플레이션의 상승압력은 크지 않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한국은행 종합기획직원(G5) 채용 필기고시에서 경제학 과목에 나온 서술형 문제다. 응시자들은 필립스 곡선 등을 이용해 인플레이션 상승 리스크가 높다는 입장과 그렇지 않다는 입장을 각각 설명해야 했다. 이 시험이 출제될 당시까지만 해도 문항에 등장하는 서머스, 블랑샤와 사제지간이거나 실제 친분이 두터운 이창용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국장이 한은에 올 것이라는 점은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계적인 석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학자가 총재가 됐을 때 한은의 입사시험 난이도가 어떻게 바뀔지 확인할 기회가 왔다. 한은은 2023년 한은 신입직원 종합기획직원(G5) 채용 안내 공고를 내고 이달 22일 채용설명회를 연다. 이달 중 지원서를 접수해 8월 서류전형, 9월 필기시험, 10~11월 면접전형을 거쳐 12월 최종합격자를 발표한다. 신입행원들은 내년부터 입행하게 된다. 사실상 이창용 1기 공채가 시작된 셈이다.
과거 ‘신의 직장’이라 불렸던 한은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고 하지만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근무 여건 등으로 금융공기업에 대한 취업 선호도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그중에서도 한은에 들어가기는 여전히 어렵다. 학벌이나 나이 때문이 아니다(한은 지원자격에 학력·연령 제한은 없다). 국내 모든 필기시험 가운데 가장 어렵다는 한은 입사시험 난이도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이창용 총재가 취임하고 처음 진행되는 공채인 만큼 난이도나 출제 방식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항간에는 한은 총재가 외부 출신이냐 내부 출신이냐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진다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문제 중 계량경제학 문항이 많아지면 난이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총재가 직접 문제를 내지 않는 이상 난이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총재 관심사가 반영된 문제가 나올 수 있다는 반응이다. 총재 관심사에 따라 한은 입사시험 방식도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과거 외부 출신인 김중수 전 총재가 취임한 이후 한은은 인문과학형 논술 문제를 내기도 했다. ‘문사철(文史哲)’을 강조한 김 전 총재의 생각이 반영되면서다. 당시 ‘가족관·결혼관에서 세대 간 가치가 차이나는 이유를 논하라’라는 문제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는 금융위원회, IMF 등 여러 기관을 두루 거쳤지만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같은 학교의 이준구 교수와 경제학원론을 저술한 경제학자이기도 하다. 평소에는 한은 총재이자 금통위원회 의장으로서 발언하지만 학술적 성격이 짙은 ‘BOK 국제컨퍼런스’ 같은 행사에서는 경제학자로서 고민을 털어놓는다. 이러한 고민이 이번 시험에 반영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시 이 총재는 “한국 등 인구고령화 문제에 직면해 있는 일부 신흥국에 저물가와 저성장 환경이 도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며 최근의 인플레이션 상황을 넘어 장기적인 과제를 언급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연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