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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신분은 출생 아닌 능력대로” 근대화 일군 조선의 은수저들

■출생을 넘어서(황경문 지음, 너머북스 펴냄)

서얼·중인·향리 등 제2 신분집단

구한말 이후 정치적 혼란기 틈 타

전문지식·재산 무기 상층부 진입

"신분은 출생 아닌 성취 가능한 것"

의식전환으로 후손들 근대화 주도





민간 설화 ‘춘향전’에서 춘향은 양반인 성참판과 관기 월매 사이에서 나온 서얼이다. 춘향은 기생도, 노비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양반도 아니다. 당시 춘향에게 주어진 거의 유일한 선택지는 양반의 첩이 되는 것이었다. 이몽룡과의 결혼이라는 결말은 조선 서민들의 판타지에 불과하다.




한국 개화 운동 지도자였다가 친일로 전향한 윤치호 일가 모습./사진제공=너머북스한국 개화 운동 지도자였다가 친일로 전향한 윤치호 일가 모습./사진제공=너머북스


하지만 조선의 서얼들을 구한말과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이르러 극적인 전환을 맞는다. 해평 윤씨 서얼 가문이 대표적이다. 17세기말~18세기초 하급 무반 관리였던 윤세겸의 첩 자손이었던 윤웅렬은 대한제국 시대에 고위직을 두루 역임했고 일제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았다. 윤웅렬의 장남 윤치호는 한국 개화 운동 지도자이자 교육자로 한 때 독립운동을 했지만 결국 친일로 전향한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웅렬의 동생 영렬의 손자이다. 이밖에 이 가문은 서울대 총장, 서울시장 등 여러 엘리트를 배출하며 명문가로 남아있다.

신간 ‘출생을 넘어서’는 서얼을 비롯해 중인, 향리, 무반, 서북인 등을 ‘제2 신분집단’으로 규정하고 이들 후손들이 한국 근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한 책이다. 저자는 캔버라 호주국립대의 황경문 교수다. 이들은 유교의 교리와 양반 지배 밑에 있으면서 수세기 동안 조선의 관료적, 사회적 위계 질서를 보조하는 위치에 머물렀다.

1890년대 동래부사가 재판정을 열고 있는 가운데 향리들이 피고·원고를 둘러싸고 있다./사진제공=너머북스1890년대 동래부사가 재판정을 열고 있는 가운데 향리들이 피고·원고를 둘러싸고 있다./사진제공=너머북스



중인은 통역·법률·의술·과학·회계·서화 등 전문 분야의 사회 신분을 세습했다. 향리는 고려 시대 때까지만 하더라도 지방을 호령하던 호족 세력이 뿌리지만 양반들에게 멸시당하며 양반들에게 멸시당하며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의 실무를 수행했다. 무인 가문 역시 문과 시험은 아예 볼 수 없었고 병조판서처럼 군사력을 지휘하는 고위 무관 자리에도 오를 수 없었다. 황해·평안·함경 등 서북 3개도 출신은 조선 건국 때부터 차별 당했고 문과에 합격해도 고위직으로 승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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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은 구한말 이후 전문 지식과 재능, 재산, 일본 유학 등을 무기로 정치적 혼란을 틈타 조상들이 수백 년 간 염원하던 관료체계의 상층부에 진입한다. 특히 일제가 과거제도를 없애버리고 신학문과 전문 교육들을 받은 한국인을 우대하면서 신분 상승의 날개를 달게 된다. 이들은 식민지 초기인 1910년대 도지사와 도 참여관 등 조선인의 고위직을 거의 독점했다.

이 같은 관료적 지위는 정치·교육·문화 등 다른 분야에서도 엘리트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다. 이동휘, 김구, 이승만, 안창호, 조만식, 박은식, 주시경, 박영철, 이승훈, 구영서, 현진건, 최남선, 이광수, 김소월, 김동인, 나혜석, 주시경, 이승훈, 백인제 등이 이들 ‘제2 신분집단’ 출신이다.

구한말 외국과의 교섭과 통상을 맡았던 외무아문의 관료들./사진제공=너머북스구한말 외국과의 교섭과 통상을 맡았던 외무아문의 관료들./사진제공=너머북스


저자는 이들 집단이 출세를 위해 외세 부역까지도 서슴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라고 비판한다. 유명한 친일파는 대부분 사대부 출신이고 ‘제2 신분집단’에서도 다수의 독립운동가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이들에게는 사대부들과 마찬가지로 민족 국가에 대한 충성보다는 고위직 진출을 통한 입신양명과 ‘가문의 영광’이 더 중요했다고 말한다.

이들은 양반 위주의 통치체계에 대해 환멸을 드러내면서도 자신의 신분집단 내에서는 특권을 유지했다. 세습 신분 제도의 희생양일 뿐 아니라 그것의 실행자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출생과 가문에 기반해 관직을 배정하는 체계를 개혁하려 하기보다는 양반이 되기 위해 자신이 속한 집단의 권력 접근 통로를 넓히는 데만 주력했다. 이 때문에 중인과 향리, 서얼들은 서로를 경멸하고 같이 엮이는 것을 싫어했다.

1920년대 일제시대 때 한 지방 군청의 한국인 관료들./사진제공=너머북스1920년대 일제시대 때 한 지방 군청의 한국인 관료들./사진제공=너머북스


그렇다면 이들이 한국 사회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들의 부상으로 사회적 지위가 출생에서 경제적 부나 학력을 쌓으면 성취 가능한 것으로 바뀐 것이 한국 근대성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산업화와 한국인 자본가 등장, 자본주의 윤리의 일상화는 이 같은 의식전환의 이후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조선시대 신분의식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엘리트 주의’라는 이름으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일부 재벌 가문은 끼리끼리 혼맥을 만들어 신분과 부를 대물림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명문대 졸업장이 사회적 지위를 좌우하는 현실도 조선 왕조에서 출생 배경이 관료 자격을 결정했던 것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저자는 ‘제2 신분집단’이 ‘지위 의식’ 자체를 없애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성공 스토리를 바탕으로 노력하면 높은 지위도 성취 가능하다는 믿음을 심어주면서 한국의 근대적 전환을 이끌었다고 말한다. 또 이 같은 인식 전환이 ‘하면 된다’라는 기업가 정신에 바탕을 둔 ‘한강변의 기적’을 추동 했는지 여부도 논의해 볼만한 주제라고 말한다. 3만2000원.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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