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폭스바겐, 일본 도요타 등이 대만 TSMC와 협력해 반도체 내재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들이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에서 독보적 선두인 TSMC와 손잡고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에 대응하는 모양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반도체 공급망 확보와 칩 내재화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반도체 설계 및 위탁 생산을 위한 협력에 나설지도 관심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베르톨트 헬렌탈 폭스바겐 전략 반도체 담당은 12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열린 반도체 박람회 ‘세미콘 웨스트 2022’ 기조 연설에서 TSMC와 자체 칩 개발을 위해 협력 중이라고 밝혔다.
이 발표에서 헬렌탈 담당은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 웨이저자 TSMC CEO 등 양 사 수장이 함께 사진을 찍은 모습을 공개했다. 양 사 임직원이 TSMC 건물 앞에서 촬영한 모습도 발표 슬라이드에 담았다. 그는 “최근 폭스바겐 CEO는 TSMC, 글로벌 파운드리, 퀄컴 최고위 경영진과 직접 만나 반도체 생산능력과 기술에 대해 논의했다”며 “회사는 태스크포스(TF) 차원을 넘어 경영진이 나서서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연설에서 헬렌탈 담당은 자체 칩 개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완성차 업체인 폭스바겐이 향후 반도체를 직접 설계해 TSMC에 생산을 맡기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TSMC는 폭스바겐과의 협력 외에도 세계적인 완성차 업체들과 협력을 기민하게 타진해 나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쉐보레·캐딜락 등 유명 자동차 브랜드를 보유한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TSMC와 협력해 차량용 반도체 개발을 협력한다고 밝혔다.
일본 브랜드들은 지분 투자를 하면서까지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한 일본 소니·도요타의 자동차 부품 계열사 덴소는 올 초 TSMC가 일본 구마모토현에 건립하는 새로운 공장에 지분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소니는 이 공장에 향후 2년간 570억 엔(약 5449억 원)을 투자해 2대 주주로, 덴소는 400억 엔(약 3824억 엔)을 투자해 양 사 모두 1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게 됐다. 이 투자로 새로운 공장이 완성되면 두 회사는 차량 조립에 필요한 칩을 원활하게 공급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완성차 회사와 TSMC 간 협력 관계가 두터워지는 가운데 현대차그룹과 삼성전자의 반도체 협력 움직임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대차와 부품 계열사 현대모비스는 내부 반도체 연구개발(R&D) 조직을 강화하면서 국내 유력 반도체 업체들과 각종 전장용 반도체 개발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가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를 통해 자사가 직접 개발한 반도체를 생산할 공산도 크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미국 최대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자율주행 칩을 양산한 경험이 있다.
이처럼 완성차 업체와 파운드리 간 협력이 늘어나는 이유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동차 시장에서 반도체 공급이 1년 6개월 이상 지연되고 있어서다. 게다가 차량 한 대당 필요한 반도체 수가 200개 내외에서 향후 2000개 수준으로 늘어나는 만큼 완성차 업체와 파운드리 회사 모두 급변하는 시장에 대응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가 업계 주요 이슈로 떠오르면서 파운드리 업체와 완성차 간 협력이 더욱 활발히 전개될 것”이라며 “차량용 반도체 80% 이상이 40㎚(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상의 레거시(성숙) 공정에서 이뤄진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