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인생의 활력소를 충전하기 위함이다. 마치 당 떨어지기 전에 당을 보충해 주는 것처럼 번-아웃이 엄습해오기 전에 여행을 떠난다. 꽤 오래전부터 루틴으로 정착된 정기적인 여행은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넓혀주는 동시에 삶을 활기차고 윤택하게 유지해준다.
조금 뜸해졌다 싶으면 여지없이 마음속에서 소요가 일어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마따나 그것은 어쩌면 ‘병(病)’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말이지 가슴 저 밑바닥에서 끊임없이 울려오는 먼 북소리다. 그것이 필자를 길 떠나게 한다. 국내든 해외든 딱히 목적지가 중요하진 않다. 산이든 바다든 섬이든 상관없다. 여행은 그 자체로 보상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삶이 나를 속이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현재의 삶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하기 위함이다. 살면서 누구나 다 화나고, 울고 싶고, 억울하고,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여행을 선택했다.
낯선 곳,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 아무런 방해 없이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갖고 나면 다시 작은 용기가 생겨나곤 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제주 서쪽 해안 올레길을 나 홀로 걸으면서 마음을 비우고 또다시 채우고.
일찍이 푸쉬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라고 했지만 모든 사람이 성인군자가 아닌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삶이 나를 속여서 화가 나거나 속이 상할 때는 마땅히 그에 합당한 처방과 조치를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쌓여서 자칫 큰 병이 된다. 스트레스 관리의 철칙은 그때그때 적절하게 풀어주는 것이다. 쌓여서 ‘큰 병’이 되기 전에 ‘작은 여행’을 떠나보자.
『여행의 이유』에서 김영하 작가는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라고 말한다. 대개 여행이 그러하다.
똑같은 장소를 다녀왔는데 누구는 여행이라고 칭하고 누구는 관광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있다. 무작정 떠나기, 무계획으로 즐기기, 날짜별 시간별 계획 짜기 등 여행을 즐기는 방법은 인구수만큼이나 다양하다. “딱 이렇게!”라는 정답은 없지만, 사전에 계획도 좀 세우고 종교사나 미술사 같은 공부도 좀 하고 떠나면 현지에서 여행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 게 훨씬 풍부해지지 않을까? 여행을 떠날 것인가 관광을 떠날 것인가는 오롯이 각자의 선택이다.
어떻게 하면 즐겁고 의미 있고 기억에 오래 남는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소위 여행의 기술이란 게 있을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지에서의 그 순간에 최대한 집중한다고 한다. 그 자신이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되려고 하며, 작은 수첩에는 나중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헤드라인만 기록한다고 한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음으로써 여행지에서 해야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고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는 노력을 잉여의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진정한 여행은 단순히 어느 여행지를 찾아가서 한번 둘러보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마르셀 푸르스트는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가지는 것”이라고 했다.
100세 인생 시대다. 늘어난 수명만큼 건강관리를 잘해서 가보고 싶은 곳을 다 여행해 보자. 여행을 통해 삶의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해보자. 인생 후반전의 여행은 이번 여행을 통해 얻게 된 기념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