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기·벤처

청계천 꼬마들이 벤처기업의 원조였다?

[라이프점프×한국소상공인교육진흥원] 곽의택 한국소상공인교육진흥원 이사장_8편

1960~70년대 취업위해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한 지금의 60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기계금속 가공집적지 형성해

이미지=곽의택이미지=곽의택




1960년대 서울 청계천을 끼고 있는 입정동과 산림동 일대는 기계공구상가와 기계제조공장이 주로 분포했던 지역으로 서울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유일한 공업 집적지였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겨우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 지역에 공구상가(세운상가)와 기계공장이 밀집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주로 이태원이나 동두천의 미군 부대로부터 흘러나오는 중고 기계제품들을 취급했기 때문이었다. 이전에는 제대로 된 국산 장비나 부품을 구하기 쉽지 않았던 시기에 미군 부대 물건은 산업화의 중요한 아이템 된 셈이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산업화가 진행될 당시 청계천은 만물 상가로 통했고, 지방에서 많은 사람이 제품을 사러 올라오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입정동과 산림동에 새로 생겨나는 점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주거지역들은 차츰 제조 공장 지역으로 변모해 갔다. 공장에서 필요한 시제품을 제작하거나 소량의 제품을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곳은 세운상가 일대의 전자 부품 및 기계제조업 공장들밖에 없었다.



특히 청계천은 80년대에는 우리나라 개인용 컴퓨터 주변장치 및 국산 개인용 컴퓨터의 개발에 이르기까지, 당시로선 혁신적인 제품개발이 일어났던 곳이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삼보컴퓨터와 한글과컴퓨터가 세운상가를 배경으로 창업했으며, 1987년 용산전자상가가 조성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컴퓨터 시장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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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개발자들은 각종 제품을 만들어내고 특허받았으며, 특허를 비싼 값에 팔아넘기기도 했다. 새로운 제품들을 계속 개발했다는 점에서 청계천 세운상가 일대의 공장들은 일종의 창업 인큐베이팅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매우 다양한 부류의 고객들이 이 일대를 활발히 이용하게 됐다. 작은 연구소나 중소기업으로부터 소량의 제품을 생산해 달라는 주문을 받는가 하면, 공과대학의 학생들이 졸업 작품으로 출품하기 위해 설계도를 맡겨서 작업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상권 활성화 덕분에 청계천은 당시 전국에서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청년들의 취업 일번지가 됐다.

1960, 70년대 당시 농촌에서는 학비가 없으면 대개가 직장을 구하러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던 시절이었다. 오죽하면 “소는 태어나면 시골로, 사람은 태어나면 도시로 나가야한다”는 말까지 생겼을까? 그래서인가 필자의 동네에서도 어린 시절 초등학교를 다닐 때 선배들이 일찍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하기도 하고 또는 부모님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야반도주(?)한 사례도 자주 있었다. 그 당시 유독 서울 청계천을 동경한 이유는 바로 청계천에 가면 기술을 배우고, 삼시세끼에 잠자리까지 해결돼서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30년 경력의 소공인 김정수 광남철강 대표30년 경력의 소공인 김정수 광남철강 대표


추석이나 설날 명절이면 서울로 취직하러 갔던 형이나 누나 또는 마을 선배들이 푸짐한 선물을 사 들고 고향으로 찾아온다. 물론 이러한 풍경은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참으로 그들이 부러워 보였다. 필자도 마음속으로 학교 졸업하면 서울로 가고 싶었고, 명절에 고향에 내려온 누나에게 일자리 하나를 부탁해 서울로 상경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 당시 청계천은 작은 가내 공업형 공장으로 비좁은 공장에서 일하다 보니 기술을 배우기 위해 취직한 종업원들의 이력서가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종업원들의 이름도 부르지 않고 그저 꼬마로 통했다.

고철로 흘러나온 미군의 무전장비를 망치로 빠개 필요한 부속을 건져내는 작업이 이뤄지는가 했더니 손재주 있는 몇몇 기술자들이 광석(鑛石)을 고물무전기의 리시버에 연결시켜 광석라디오를 조립, 학생들에게 팔기도 했다. 한 걸음 더 나가 진공관 라디오를 만들어낸 것이 최초의 국산라디오인 5球 수퍼라이도. 이와 함께 볼륨, 바리콘 등 기초적인 부품을 두드려 만들기 시작하면서 부품개발이 이뤄져 전자공업의 첫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상권 전국시대, 전자부품상가”, 경향신문 1976년 12월 9일자 기사]

그 당시 취직해 조그만 공장에서 기술을 익혔던 ‘청계천 꼬마들’이 하나씩 둘씩 성장해서 지금의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기계금속 가공집적지가 형성됐다. 지금으로 말하면 스타트업이 대거 탄생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벤처인들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제 이러한 청계천 꼬마들(소공인)의 연령대가 60세를 넘어서고 있다. 이분들이 지금 디지털 전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서 이에 대한 대책을 현장에 맞게 새롭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곽의택 한국소상공인교육진흥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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