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왜 '나쁜 정책'은 좀비처럼 끝없이 살아남을까

■폴 크루그먼 지음, 부키 펴냄

재정적 이해 관계·정치적 계산 등 얽혀

실패 검증된 부자 감세 등 여전히 잔재

거리두기 반대한 코로나 부정론도 주목

극단적 보수파의 민주주의 위협도 파헤쳐





“다 좀비 탓이다.”



신간 ‘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 머리말의 마지막 문장이다. 저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스타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다. 그는 ‘공공 지식인’을 자처하며 “책은 진실을 규명하고, 정의를 실현하고, 좀비를 추방하려는 투쟁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크루그먼은 반증(反證)에 의해 이미 쇠멸돼 무덤에 들어갔어야 하는데 여전히 생존력을 갖고 사회를 지배하는 생각을 ‘좀비 아이디어’나 ‘좀비 정책’으로 규정한다. 대표적인 것이 부자 감세 좀비, 긴축 좀비, 기후변화 부정 좀비, 불평등 부정 좀비 등이다. 이번 책은 지난 20년간 크루그먼의 뉴욕타임스(NYT) 등의 기고문을 주제별로 묶었고 각 장별로 개략적인 소개 글을 추가했다.

신케인즈 학파인 그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실패를 맹공하는 것으로 신자유주의 학파와 미 공화당에 대해 포문을 연다. 크루그먼은 미국 우파들이 전염병 학자들의 경고에도 재정적 이해 관계, 이념, 약삭빠른 정치적 계산 등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위험성을 묵살했다고 비판한다.

‘작은 정부’라는 보수의 금과옥조에 매달려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에 반대했고 실업수당이나 보조금 지급 등과 같은 정부 개입 정책에 소극적이었던 탓에 “엄청난 참사”를 불렀다는 것이다. 결과는 수백 만명의 사망자와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 불황의 지속이었다. “코로나19 부정론은 기후 변화 부정론이나 감세 옹호론처럼 ‘좀비 아이디어’였다. 그렇게 결국 좀비 대재앙이 닥쳤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좀비 아이디어의 실패가 검증됐는데도 “여전히 비척비척 걸어 다니며 사람들의 뇌를 파먹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인간의 이기주의를 신성시해야 이익을 얻는 석유재벌 코크 형제와 같은 억만장자의 자금력, 이에 영합한 정치인과 두뇌집단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부자감세라는 마법에 보내는 광신이야말로 최강 좀비”이다.

그는 “가장 끈질긴 좀비는 부유층에 세금을 물리는 일이 경제 전반에 막대하게 해악을 입히며, 고소득층에 매기는 세금을 낮추면 경이로운 경제 성장을 누리게 될 거라는 주장”이라며 “이 신조는 현실에서 늘 실패를 거듭해 왔지만 공화당 안에서는 어느 때보다 위세를 떨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1980년대 초 레이건 정부의 감세안, 2000년대 초 조지 W. 부시 정부의 감세 정책, 2017년 트럼프 정부의 감세안까지 부자 감세가 공화당의 주요 집권 정책이라고 분석한다.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주면 투자와 소비가 늘면서 그 혜택이 저소득층과 중소기업에 퍼져나간다는 ‘낙수 효과’가 이론적인 근거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감세 정책은 미 경제의 성장을 이끌지 못했고 재정악화와 불평등 확대만 초래했다는 것이 크루그먼의 지적이다.

관련기사



또 그는 불평등 심화가 저학력 노동자들의 경쟁력 하락 때문이라는 시각도 반박한다. 1972년부터 2001년까지 대졸자의 평균 소득은 34%, 즉 매년 1%씩 늘어나는데 그친 반면 소득 100분위 99%는 87% 올랐고 100분위 99.9%는 181%나 늘었다. 중산층이나 고학력자조차 성장의 과실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나아가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으면서 불평등이 불가피하다는 ‘기술격차 좀비’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끔 하려는 꼼수”라고 비판한다. 실제로는 임금 상승이 저조한 이유가 기술발전보다는 노동자들의 협상력 약화에 있다는 것이다.

책은 “미래 세대에게 그만 훔쳐라”며 점잖은 구호를 내걸면서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는 ‘긴축 좀비’도 허구라고 얘기한다. 사실상 공공지출을 줄이고 실업률을 방치하면서 경기 회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요컨대 ‘긴축 좀비’는 경기 악화 때 정부의 손발을 묶어놓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특히 그는 올리비에 블랑샤르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연구 결과를 빌어 정부 부채가 늘더라도 일반적으로 평균 부채 이자율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보다 낮기 때문에 부채가 저절로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기후 변화는 거짓말이며, 일어나더라도 인간 때문이 아니며, 인간이 일으키더라도 그 어떤 조치든 일자리를 없애고 경제 성장을 망친다”는 부정론자들의 주장도 반박한다. 그는 “이미 다 없애 버렸다고 여겼는데 어디선가 자꾸 튀어 나오는 바퀴벌레 발상”이라며 “화석 연료 지지자들에게 수익을 올려주고 정치적 사리사욕을 채울 욕심에 문명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며 공화당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좀비는 경제 영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정부 역할을 강조하면 사회주의라고 매도하는 ‘이크, 사회주의 좀비’, 정책의 본질보다는 소소한 이미지를 소비하는 언론 행태 등도 좀비 아이디어의 하나로 규정한다.

크루그먼은 자칭 ‘싸움닭’ 답게 극단적인 보수주의가 미국과 전세계 경제, 민주주의를 어떻게 위기에 빠트렸는지 파헤친다. 유머와 재치, 조롱 섞인 문장을 읽는 재미도 있다. 다만 2000년대 초반의 기고문까지 들어있는 탓에 유로존 위기나 오바마케어 등을 둘러싼 주제는 다소 구문이라는 느낌이 든다.

또 최근 그가 로렌스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과의 인플레이션 논쟁에서 패배한 점을 감안하면 책의 일부 주장은 한 번 걸러 들을 필요도 있다. 크루그먼은 미국 중앙은행의 돈 풀기에도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며 미 경기 침체 가능성도 낮다고 보고 있지만 현실은 낙관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2만5000원.


최형욱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