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장관의 경고에도 경찰국 신설에 반발하는 경찰의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30일 예정된 경감·경위급 현장팀장 회의를 14만 전체 경찰회의로 확대해 열기로 하는 등 반발 수위를 높였다. 다만 정부가 26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경찰국 신설안을 원안대로 통과시키면서 ‘경란(警亂)’이 분수령을 맞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경찰국 신설을 위한 쐐기를 박은 상황에서 경찰조직의 응집력에 따라 향후 확전 여부가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국 신설을 놓고 경찰이 강력 반발하고 있지만 정부 입장도 강경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출근길 문답에서 “정부가 헌법과 법에 따라 추진하는 정책과 조직 개편안에 대해 집단적으로 반발한다는 것이 중대한 국가의 기강 문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역시 이날 경찰 반발에 대해 “부화뇌동으로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대통령과 장관이 경찰에 대해 경고장을 날린 가운데 정부는 이날 열린 국무회의에서 행안부 경찰국 신설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다음 달 2일 공포·시행될 예정이다.
정부가 경찰국 신설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키면서 사실상 쐐기를 박았지만 경찰의 반발은 격화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도 1인 시위와 대국민 홍보전을 이어갔고 30일로 예정된 팀장 회의를 전체 경찰회의로 확대하기로 했다. 팀장 회의를 제안한 서울 광진경찰서 김성종 경감은 이날 경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당초 팀장 회의를 경찰인재개발원에서 개최하려 했으나 현장 동료들의 뜨거운 요청들로 ‘전국 14만 전체 경찰회의’로 변경하게 됐다”며 “수천명까지는 아니더라도 1000명 이상의 참석자가 예상되기에 강당보다는 대운동장으로 회의 장소를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동조하는 경찰관들은 “연가를 내고 아산으로 놀러간다” “아산으로 휴가갈 사람 모집합니다”라며 호응을 보냈다. 경찰 내부망에는 ‘행운의 편지’ 캠페인도 등장했다. 경찰국 신설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지휘부가 반발 자제를 요청했지만 댓글로 경찰국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끝까지 나타내고 이를 동료 경찰들에게도 전달하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경찰의 시간’은 여기까지다. 전체 경찰회의 이후 다음 ‘스텝’이 없다는 것은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는 경찰관들의 고민이다. 30일 전체회의 직후 사흘 뒤면 경찰국은 공식 업무를 추진한다. 이미 경찰청은 경찰국 직제에 맞춰 인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총경 회의를 주도했다 대기발령을 받은 류삼영 전 울산중부경찰서장은 이날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타깝게도 개인으로서나 조직적 차원에서 경찰국 신설 추진을 막을 방법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잘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류 서장은 경찰 내부망에서 “14만 경찰 모임 이야기가 나오는데 일단은 국회에서 논의되는 과정을 살펴달라”고 당부했다.
‘검수완박’ 정국에서 대검찰청이 했던 것처럼 권한쟁의심판 등 법리 싸움에 나설 지휘부가 없다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는 “경찰국 신설 반대 회의에 참석하면 엄정 조치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경찰조직은 경찰대·간부후보·고시특채·일반순경 등 입직 경로가 다양한 데다 퇴직하더라도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는 검찰과 달라 직을 걸고서라도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기 쉽지 않은 한계 때문에 집단행동을 이어갈 동력을 확보·유지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결국 경찰국 신설과 경찰 통제 방안을 둘러싼 공방은 정치권으로 넘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경찰장악 저지대책단장은 이날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경찰국 신설은 정부조직법 위반 논란이 있다”며 “경찰국 신설에 대한 가처분 신청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출신인 권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이제 헌법과 법률의 시간이고 국회의 시간”이라며 “국회에서 경찰국 신설 등이 정부조직법과 경찰법 제10조 등을 위반했는지 확인하고 이 장관을 탄핵 소추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지난한 정치권 공방과 법률 싸움을 거치면서 경찰국 반대 여론은 식을 수밖에 없고, 정부의 경찰 개혁과 처우 개선 작업은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행안부는 다음 달부터 경찰 보수 인상을 위한 경찰 공안직화 논의를 전부처 협의를 거쳐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또 경찰국 반대 의견이 경찰대 출신을 중심으로 과표집됐다고 보고 경찰대 개혁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 장관은 이날 대통령 업무보고 브리핑에서 “경찰대가 고위 간부를 양성하는 순기능이 있는 반면 졸업 후 자동적으로 경위부터 출발하는 것은 불공정한 면이 있다”면서 “각계 전문가와 국민, 국회, 경찰 구성원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경찰대 문제 해결을 위해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