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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스토리]"히트작 수익으로 실험작 재투자…팬데믹에도 '선순환 모델' 지켰죠"

■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프로듀서

거리두기로 뮤지컬 취소·중단 잇따랐지만

배우 출연료 일부라도 지급하며 무대 준비

명작 '시카고' '아이다' 등 성공적으로 마쳐

수익성 불확실한 실험작에 과감한 투자

'마틸다' '빌리 엘리어트' 흥행성 인정받아

대극장 연극도 2년에 한 번씩은 선뵐 것





국내 뮤지컬 시장을 이끄는 공연기획사 중 한 곳이 신시컴퍼니다. 유명한 외국 뮤지컬의 라이선스를 획득해 무대에 올린다는 생각이 없던 시절 ‘라이선스 뮤지컬’이라는 개념을 확립했으며 히트작도 많다. ‘맘마미아!’와 ‘시카고’는 각각 누적 관객 200만 명과 100만 명을 넘긴 스테디셀러다. 또 ‘아이다’는 초연 이후 약 17년 만인 이달 초 누적 관객 100만 명 고지를 넘어섰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2년 반 넘게 사그라들 줄 모르면서 그로 인한 공연 중단·취소도 계속됐다.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프로듀서와 서울 양재동 사무실에서 만난 22일에도 신시컴퍼니가 제작한 연극 ‘햄릿’이 공연 팀원 중 확진자 발생으로 일부 일정을 취소한 상황이었다. “담배 피울 일만 늘어난다”는 그는 “(햄릿의) 예정됐던 40회차 중 10회차가 취소됐다. 전체의 4분의 1이 사라진 셈”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공연을 멈출 수는 없었다. 박 대표 프로듀서는 “공연 2년 전부터 오디션을 통해 팀을 구성해 준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우리만큼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공연을 중도 취소하거나 중단했던 곳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공연의 중도 취소가 잦았다는 것은 그만큼 올렸던 공연도 많았다는 의미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하게 시행되는 동안 아예 공연 준비를 접고 쉬었다면 적자 폭은 훨씬 줄었겠지만 지난 2년 반 동안에 예정됐던 공연이 중단, 취소되는 한이 있어도 그대로 진행했다. 중단한 공연이라도 출연진에게 연극의 경우 50%, 뮤지컬은 30%의 출연료를 지급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출혈이었지만 공연이 관객은 물론 배우·스태프와의 약속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팬데믹이 시작된 지 벌써 2년 반이 넘었는데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인력으로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무기력을 느끼죠. 연극이나 뮤지컬을 무대에 올렸다가 중단되고 취소되는 게 하도 반복돼 놀랄 일도 아닌 것 같아요. 팬데믹 시대에 공연 중단과 취소는 숙명인 것 같아요.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더라고요. 스트레스 받으면 한이 없지요.”



신시컴퍼니의 이 같은 흐름은 연극·뮤지컬 업계에서 보기 드문 일종의 ‘선순환 모델’로 꼽힌다. 흥행성을 검증받은 캐시카우격의 작품으로 수익을 낸린 뒤 대규모 투자나 실험성 강한 작품에 재투자하는 것이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연극 제작도 해외 뮤지컬의 라이선스를 따는 데 일종의 플러스 알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그는 귀띔했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공연한 ‘시카고’가 일부 지방 공연을 제외하고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5월 개막한 ‘아이다’도 중단 없이 순항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맘마미아!’도 내년에 다시 공연할 예정으로 올 봄 배역 오디션을 진행했다. 다만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이후 뮤지컬 업계에서 흥행성이 검증된 대형 작품만 무대에 오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박 대표 프로듀서는 “어려운 시국에 과감히 새로운 작품에 도전할 동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환경 자체가 녹록지 않은 것 같다”면서 “지금은 과거의 레퍼토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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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 프로듀서는 제작비를 많이 투자한 대규모 작품이나 실험작들도 무대에 올렸다. ‘마틸다’ ‘빌리 엘리어트’처럼 아역들이 이야기를 이끄는 뮤지컬이 대표적이다. 이들 작품은 아역 배우들이 오디션에서 캐스팅된 후 20개월간의 훈련을 거쳐 무대에 오르기 때문에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자주 공연할 수도 없다. ‘빌리 엘리어트’는 지난해까지 세 시즌을 치렀고 ‘마틸다’도 10월 두 번째 시즌을 시작하며 흥행성을 인정받았지만 공연을 준비하던 당시에는 수익성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게다가 코로나19의 와중에 아역 배우들의 확진 위험도 안고 가야 했다. 박 대표 프로듀서는 “한국은 물론 어느 나라 프로듀서도 피하는 작품”이라며 해외에서 라이선스를 딸 때 경쟁조차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박 대표에게 특히 두 작품은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는 “아역 배우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제게도 많은 공부가 됐다. 체계적 훈련을 거쳐 그 열정과 끼를 무대에서 발산하는 것을 보면 이 작업이 성인들만 출연하는 뮤지컬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미래 세대인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문화예술 콘텐츠 프로그램이 거의 없는데 ‘마틸다’ ‘빌리 엘리어트’는 주로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의 비중이 큽니다. 공연장 로비에서 아이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들어오는 것을 보면 ‘저 친구들이 문화 강국 한국의 미래인데’ 하는 생각에 그 자체로도 감동을 받아요. 직접 극장 문화를 체험하는 거죠. 아이들이 공연을 보면서 무대 위 상황에다 나를 비춰보고 ‘내가 빌리나 마틸다라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면서 상상력도 키울 수 있습니다.”



다른 뮤지컬 제작사도 마찬가지지만 신시컴퍼니의 경우 특히 오디션을 통한 캐스팅 원칙이 철저한 곳으로 꼽힌다. 주·조연급을 캐스팅할 때 신인급 배우들이 비교적 많이 나오는 편이다. 이 덕분에 최근 논쟁이 벌어졌던 이른바 ‘스타 캐스팅’ 문제에서 가장 자유로운 곳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오디션장에 가지도 않는다”는 박 대표 프로듀서는 담당자들에게 “캐스팅한 배우들을 신뢰한다”는 말과 함께 캐릭터에 맞으면 신인이든 무명이든 가리지 않고 뽑을 것을 항상 강조한다고 전했다. 그는 “배우들이 성실하게 작품에 임하는 모습을 보며 신뢰가 쌓인다. 예술가로서 기본적 태도를 견지하는 배우들은 시간이 걸려도 언젠가는 돋보이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100% 전문 배우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임해야 한 작품의 팀을 꾸릴 수 있다”며 “스타 배우들로 주목을 끌기보다 기본적인 완성도가 높다는 신뢰를 얻는 것이 더 좋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신시컴퍼니는 뮤지컬 전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앙상블의 완성도가 높은 제작사로 꼽히며 뮤지컬 시상식에서 ‘앙상블상’도 가장 많이 받았다. 박 대표 프로듀서는 집무실 한편에 모아둔 트로피를 보여주며 이를 강조했다.

그는 2009년 ‘신시뮤지컬컴퍼니’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꾼 뒤 꾸준히 연극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스스로 문화사업가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박 대표 프로듀서는 전신 격인 극단 ‘신시’가 창단된 1987년부터 함께 한 멤버로 스스로를 ‘연극쟁이’라고 칭한다. 그는 “연극과 뮤지컬을 함께하지 않으면 신시컴퍼니의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것 같다”며 “연극을 해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연극을 잘 만드는 팀은 뮤지컬도 잘 만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대극장 연극을 2년에 한 번은 제작하려고 한다”며 “1000석 이상의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이 많아져야 대중성도 확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해외의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을 성공시켜 관객층을 넓힌 경험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그는 올해로 공연계에 투신한 지 40년에 달하는 60세의 베테랑이다. 인터뷰 시간이 예정을 훌쩍 넘겨 2시간을 향해 갈 무렵,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한 작품, 한 작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계속 임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실제로 은퇴를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년 ‘올해 1년이 끝’이라는 생각을 반복하면서 일한다는 얘기다. 그는 “매사 마지막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최선을 다해 작품을 만들고 좋은 아이템도 개발할 수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박준호 기자 사진=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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