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의 ‘AP위성’ 본사. 2000년 창업해 1세대 우주기업으로 손꼽히는 이곳은 여기저기 ‘보안’이라는 딱지가 붙은 가운데 많은 연구원이 연구개발(R&D)에 몰두하는 모습이었다. 우주 1세대 벤처로는 ‘쎄트렉아이’도 있지만 지난해 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지분 30%(1000억 원)가 팔리며 피인수합병(M&A)됐다.
AP위성은 지난달 21일 한국형 발사체(누리호) 2차 발사 성공 당시 상단에 APSI(Asia Pacific Satellite Inc·AP위성)라고 새겨진 글씨가 카메라에 잡히며 부각됐다. 그만큼 누리호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게 인정받은 것이다. 이 회사는 앞으로 누리호가 지상 700㎞ 궤도에 1.5톤의 진짜 위성을 쏴올릴 때 자세를 잡기 위한 162㎏ 성능검증위성을 개발했다. 앞으로 2년간 초속 7.9㎞로 하루에 14.6바퀴씩 지구를 도는 이 위성은 이번에 서울대·한국과학기술원(KAIST)·연세대·조선대가 만든 4개의 큐브위성(초소형 위성)과 1개의 더미큐브위성도 우주 공간으로 사출했다. 다만 이 중 서울대와 KAIST팀이 만든 큐브위성만 통신이 연결됐다. 현재 성능검증위성은 국내 기술로 개발한 S-band 안테나, 발열전지, 자세 제어용 구동기가 우주 환경에서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있다.
R&D 현장 곳곳을 안내한 류장수 AP위성 회장은 “국민 안심 프로젝트인 누리호는 이번에는 1.5톤 더미위성(기능이 없는 위성모사체)을 쏴 올렸지만 진짜 위성을 쏴 올렸을 때를 대비해 성능검증위성을 가동하고 있다”며 “처음 시도해 2개의 큐브위성 수신에 성공한 것도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위성의 자세 제어가 가장 중요한데 관련 소프트웨어와 우주항법 기술을 익혀 대형 위성의 자세 제어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며 “중동이나 동남아 등 해외에서 신뢰도가 많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특히 이날 류 회장은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나 한화가 3000억 원을 투자해 지분 8.8%를 확보한 영국의 ‘원웹’, 제프 베이조스의 아마존(카이퍼 프로젝트)이 뛰어든 위성인터넷 시장에서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는 기술을 처음 공개했다. 그는 “스타링크·원웹과 차별화된 역발상으로 접근해 지구 오지 어디에서나 저렴하게 쓸 수 있는 위성통화·인터넷 시장을 정부·대기업 등과 같이 개척할 것”이라고 포부를 피력했다.
그의 빅픽처는 스타링크나 원웹 등의 위성인터넷을 쓰려면 커다란 송수신기를 설치해야 하는 것과 달리 휴대폰 자체에 칩을 내장해 위성과 송수신하는 방식이다. 스타링크가 200㎏대 소형 위성을 지구 저궤도(600~800㎞)에 대거 띄워 전송량을 좋게 하는 것과 달리 이 회사는 지구 중궤도(1만 ㎞ 안팎)에 5~6톤짜리 대형 위성을 22개(최종 66개) 쏴올려 서비스하겠다는 복안이다. 류 회장은 “스타링크는 큰 송수신기를 설치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며 “우리는 성능이 좋은 송수신기를 칩 형태로 휴대폰에 내장해 편리하게 만들 것”이라고 비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스타링크와 원웹은 오지에서도 동영상까지 시청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 특징”이라며 “AP위성은 이용료를 10%선까지 낮춰 위성통화와 인터넷을 할 수 있게 할 것”이라며 차별화 의지를 나타냈다.
현재는 스타링크가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효용성을 입증하고 있으나 앞으로 10년 내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게 류 회장의 포부다. 스타링크가 올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많은 중계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해 위성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앞서가고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타링크는 현재 227㎏의 소형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3000기 가까이 띄워 월 약 99달러에 시범 서비스하고 있으나 위성의 10%가량이 추락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머스크는 궁극적으로 4만여 기까지 위성을 쏴올릴 방침이다.
이렇게 글로벌 기업이 선점한 위성인터넷 시장에 AP위성이 야심 찬 도전장을 내민 것은 위성휴대폰 세계 1위 등 20년 이상 축적된 연구개발(R&D) 파워가 있기 때문이다. 국내 국방 분야와 해외에서 이 회사의 위성통화·인터넷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AP위성은 연 400억~500억 원의 매출 중 절반가량이 위성휴대폰과 소프트웨어에서 발생한다. 나머지 절반은 위성에 들어가는 표준 탑재 컴퓨터, 대용량 저장 장치 등에서 나온다. 전기 추력기도 정부 연구 과제에 선정돼 R&D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류 회장은 “위성의 유니트, 컴퓨터, 자료 저장 장치 기술은 에어버스나 보잉에 비해서도 기술·가격 경쟁력이 뒤떨어지지 않지만 보안 문제로 아직 수출이 안 되고 있다”면서도 “언젠가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앞서 이 회사는 2006년 세계 최초로 최소형 위성휴대폰을 출시했고 2014년에는 아랍에미리트(UAE) 등 160개국에 50만 대를 수출했다. 2010년에는 민간 기업 최초로 위성 본체(아리랑3A호)를 주관했고 2017~2021년에는 위성과 지상 간 GMR 1&2, 3G, 5G+SOC와 프로토콜 스택 개발에 참여했다.
류 회장은 “창업 이후 2250억 원을 R&D에 쏟아부었다”며 “여러 정부 부처에서 연구과제도 많이 지원해줬지만 위성통신·인터넷 분야에서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